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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떡포크’나 끓여 먹어볼까

[KIN] [책장 찢어먹는 여자] 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
등록 2011-07-23 10:55 수정 2020-05-03 04:26
» 예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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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소설가 페터 빅셀의 (예담 펴냄)는 잿빛 옷을 즐겨 입는, 나이 든 어떤 평범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더 이상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고, 미소짓기에도 화를 내기에도 너무 지친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 이야기다.

남자는 매일같이 똑같은 (아침과 오후에 각각 한 번씩 산책을 하고, 이웃과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저녁이면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상을 보낸다. 모든 일과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으면 째깍째깍 시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아아, 얼마나 무료한 나날들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는 삶에 특별한 기대도, 불만도 없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날이라면, 그가 모든 사물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 시작한 날이다.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새들이 지저귀고, 사람들은 상냥하고…. 그런데 그날따라 이 모든 게 남자의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좋아진 남자는 “이제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라고 외친다. 그리고 언제나 똑같은 책상, 의자, 침대에 다른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침대를 사진으로, 책상을 양탄자로, 의자를 시계로…. 그래서 이렇게 되었다. “아침에 이 나이 많은 남자는 오랫동안 사진 속에 누워 있었다. 9시에 사진첩이 울리자 남자는 일어나서, …양탄자 앞 시계 위에 앉아서 자기 어머니의 책상이 나올 때까지 거울을 뒤적였다.”

사실 이 소설에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소설을 이렇게 써먹어보기로 하자. 소설 속 잿빛 옷을 입은 남자처럼, 그동안 칼럼에 소재로 삼았던 음식들을 한번 바꿔 읽어보기로. 더불어 밥 먹을 때 쓰는 도구들도 조금 섞어보기로 한다. 이렇게. 김밥은 칼이라고 부른다. 라면은 포크라고 부른다. 명태는 콜라, 김밥은 믹서기, 카레는 숟가락, 떡볶이는 밥솥, 문어는 카레라고 부른다.

그래서 완성된 문장은, ‘나는 오늘 아침에 어제 감자와 소고기를 넣고 끓인 숟가락을 밥에 얹어 먹을까 고민하다가 무를 나박나박 썰어 콜라로 시원한 국을 끓여 참치를 넣고 싼 믹서기와 함께 먹었다. 점심에는 비가 오니 맵거나 따뜻한 게 좋겠는데, 떡을 넣고 포크를 끓여 먹을까, 고추장을 잔뜩 넣고 밥솥을 만들어 먹을까.’

소설 속 주인공은 이 일에 재미가 들려 사물들의 이름을 바꾸는 걸 넘어 온갖 새로운 단어들을 교체해나갔다. ‘울린다’는 ‘세워놓는다’로, ‘시리다’는 ‘본다’ 등등. 그를 따라 한번 더 응용해볼까.

‘먹는다’를 ‘던지다’로, ‘쓰리다’를 ‘늙다’로, ‘마신다’를 ‘깎다’ 정도로 바꿔보자. 그럼 이렇게 되겠지. ‘어제 술을 진탕 깎은 나는 새벽에 속이 늙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해장국을 던졌다.’

여기서 술과 새벽과 아침과 같은 명사들을 또 다른 명사들로 바꿔 끼워넣는다면 문장은 더더욱 애초의 뜻을 알아채기 힘들어지겠지. 그러나 여기서 그만두기로 한다. 남자의 이야기는 슬프게 끝났으므로.

남자는 자신이 흩뜨려놓은 단어의 세계와 다른 사람들이 쓰는 본래 단어의 세계가 너무 달라 파란 공책을 사서 새로운 단어들을 그 안에 정리했다. 처음에는 요리조리 단어를 맞춰보느라 더 이상 무료한 날들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지만, 신나는 건 잠시뿐. 그는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는데, “내일 선생님도 축구 보러 가실 건가요?”라는 말에 배를 잡고 웃으면서도 고통스러웠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웃음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세상의 모든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 또한 남자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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