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대녕이 2006년 펴낸 맛 산문집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작가의 말 중 동질감을 얻은 한 문장을 옮겨본다. “스무 살에 어머니를 떠난 뒤로 나는 온갖 곳을 떠돌았고, 남의 낯선 음식을 얻어먹으며 가까스로 연명했다.” 소설가는 책에서 간장·된장·고추장이며 소·돼지·명태·조기 등 음식의 재료가 되는 소재들까지 불러들이며 소박한 한 상을 차린다. 작가는 어머니께 자신이 차린 밥상을 권하며 이 책을 바치기로 한다. “한갓 음식으로 어머니를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음식을 얘기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또 어느 곳에서든 그 이름을 불러볼 수 있다”고 말하며.
이 중 ‘명태’장에서 나는 읽는 속도를 천천히 하며 내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추억을 꺼내들기에 앞서 소설가가 알려준 명태의 분류를 먼저 살펴보자. 작가는 명태만큼 다양한 이름과 요리법으로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바다 물고기가 없다고 한다. 익숙한 이름인 동태·황태·북어·코다리·노가리뿐만 아니라 명태는 다양하게 변주되는데, 산란 뒤 잡힌 것은 꺽태, 작은 명태는 막물태, 갓 잡은 싱싱한 명태는 선태, 큰 명태는 왜태, 어린 명태는 애기태(아기태)로 불린다.
크게 보면 다 같은 명태지만 쪼개보면 맛도 요리법도 다르니, 음식의 범주에서는 같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겠다. 그러므로 나는 명태를 좋아한다고 말하진 못하겠고, 싱싱한 명태와 무를 넣고 끓인 명태탕과 짭조름한 명란젓을 좋아한다고 말해야지. 코다리·북어·노가리 등은 명태에게 미안하지만 패스.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남의 낯선 음식을 얻어먹으며” 느낀 한 가지는, 김치 등 대부분의 음식이 아랫지방보다 간이 심심한데, 유독 생선을 넣고 국물 낸 음식은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생태탕을 잘하는 집이라고 따라가도 고춧가루를 짙게 푼 국물은 스무 살 이전까지 먹던 그것과 달랐다.
집안에서 누군가 감기에 걸리면 내 어머니는 꼭 생태탕을 식탁에 올렸다. 멸치·다시마 육수에 무를 저며 넣고 팔팔 끓이다가, 토막낸 명태와 파를 넣고 맑은 탕을 끓여냈다. 고춧가루도 들어가긴 했는데, 생선의 비린 맛을 잡는 조미료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흐리멍덩한 국물에 색을 내는 정도였다. 엄마는 푹 익은 무를 숟가락으로 퍼서 그 위에 명태의 흰 살을 얹어 감기로 열이 오른 우리 입에 떠넣어주며 “이게 바로 약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명란젓으로 말하자면 내가 젓갈에 눈뜬 음식이랄까. 알주머니를 찢어 잘게 썬 파, 마늘을 얹고 참기름을 뿌려 김이 폭폭 나는 밥에 얹어 먹으면 그야말로 밥도둑. 또 한 가지 요리법은 멸치 육수에 명란젓을 통째 넣고 파와 두부만 썰어넣어 끓인 것인데, 짠 기운이 적당히 빠지고 알이 익으면서 고소해져 맛이 참 좋다. 집에서 ‘알국’이란 조금 이상한 이름으로 불렸던 이 음식을 내가 워낙에 좋아해서 하루는 익은 명란을 건져서 도시락을 싸간 적도 있다. 그런데 이게 통째로 따로 건져놓으면 모양이 좀 그로테스크하다. 알이 익어 부피가 커지면서 주머니가 터질 듯 빵빵한 가운데, 핏줄 같은 형상이 얼기설기 지나다닌다. 초등학생이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모양의 그것을, 몬도가네처럼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한동안 반 아이들에게 꽤나 놀림받았다. 어린 마음에 내장 같다는 둥 징그럽다는 둥 놀려대면 먹기를 멈췄을 수도 있으련만 짭조름하고 고소한 그 맛은 가히 중독적이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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