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위에서 겁먹을 정도로 담배를 많이 피운다. 요즘에는 장소도 마땅치 않아 흡연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나면 한꺼번에 몰아 피우느라 더욱 그렇다. 주변에 내가 큰 병치레 없이 서른 중반에 이르는 것을 보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된 미련한 자도 있다. 멍청아 해롭다! 여러분 해롭습니다. 담배는 고등학교 때부터 피웠다. 주윤발이나 험프리 보가트를 소환해야 하는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인근 여고에 다니는 여자애를 만나 같이 놀고 있는데, 그녀가 주머니에서 회수권(예전의 버스 승차권)을 꺼내듯 담배를 집어 물고 태연히 피우기에 나도 덩달아 “마침 떨어졌는데 나도 한 개비 주렴” 했던 것이다. 그렇게 담배를 배운 뒤로는 끊어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담배를 그리 피우다 보니 당연히 라이터를 품에 지니고 다니게 된다. 막 쓰기 좋아 지포 라이터를 애용한다. 내 첫 지포 라이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마지막 지포 라이터가 무엇일지는 알 수 있다. ‘울트라맨 라이터’다.
아마 10년 전일 거다. 일본 옥션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사진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피도 세븐도 잭도 에이스도 아닌 무려 초대 울트라맨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왼쪽 아래에는 과학특수대 유성 배지가 그려져 있었다! 이 유성 배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에 나오는, 어쩌면 모든 사건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바로 그 지구방위대 배지올시다. 심지어 가슴의 타이머 부분에는 인디아나 존스 박사를 호출해야 간신히 그 유래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푸른색 보석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끈 것은 노란색 유광 페인트로 도색된 초대 울트라맨의 눈이었다. 눈이 망고 같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고요. 내 참, 대체 무슨 수로 이런 걸 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라이터와 함께 지내는 10여 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웃고 떠들고 화내고 싸우고 사랑했던 시간 내내, 이 라이터는 언제나 오른쪽 바지 주머니 안에서 나와 함께 살았다. 얼마 전 담배를 피우다 말고 이제는 너무나 늙고 쇠락한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라이터의 몸뚱이 구석구석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시간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이를테면, 여기 이 비닐이 벗겨진 건 그때 그날 술에 취해 담벼락 위에서 떨어져 생긴 상처고, 뒷면에 거뭇하게 거의 지워진 손글씨는 아무개가 사랑한다고 써주었던 것인데 아이고 아무개는 지금쯤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같은 것들.
언젠가 내게도 아들딸이 생겨 걔들이 담배를 피우게 되면 이 라이터를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 꿈 가운데 하나가 ‘자식에게 맞는 아버지가 되지 말자’인데, 아빠는 우리에게 권할 게 없어 담배를 권하느냐는 괜한 오해나 사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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