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헌법 15조는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기자에 대한 국민 여론이 급격히 나빠진다고 상상해보자. 오보와 왜곡에 대해 촛불집회가 열린다. 여야는 개헌을 추진하며 언론인 관련 헌법 조항을 넣기로 한다. ‘기자를 제외한 모든 국민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는 개정 헌법 15조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몇 안 되는 기자 출신 국회의원들이 인간띠를 두르고 외친다. “개헌안 15조를 킬(kill)하라!” 여론은 싸늘하다. 누구도 기자와 언론을 동정하지 않는다. 분권 문제 등 더 중요한 개헌 이슈에 파묻힌 채 통과된다. 개헌 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도 개정된다. 기자가 소유할 수 있는 주택과 상가의 평수도 제한된다. 뉴스 콘텐츠에 더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기획재정부는 해마다 신문값 상한선을 정해 통제한다. 기자의 아이들은 이민을 가거나 다시 기자가 된다.
황당하다고? 2년 전 그랜드앰배서더호텔 중식당 ‘홍보각’ 여경래 주방장이나 임피리얼팰리스호텔 중식당 ‘천산’의 왕덕리 주방장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마 나도 그렇게 느꼈을 게다. 위에 기록한 상상은 실제로 한국 화교들이 당했던 일이다. 화교의 역사를 취재할 때마다 ‘한국은 일본의 자이니치(재일) 차별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다.
1953년에 100원을 1환으로 바꾼 통화개혁(디노미네이션)이 있었다. 은행 거래보다 현금 보유를 좋아한 화교들이 타격을 입었다. 중국음식점에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음식값을 통제하기도 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왕덕리 주방장은 열네 살 때부터 요리를 했다. “화교들은 어쩔 수 없어서 요리사가 된 측면이 있습니다”라고 2년 전에 그는 말했다. 만화가 허영만의 19권에도 화교 가족이 등장한다. 부동산 소유에 제한을 받는 화교 가족이 한국인 요리사를 ‘얼굴사장’으로 내세웠다. 한국인 얼굴사장은 역으로 화교 가족을 내쫓고 식당을 빼앗았다. 차별은 남아 있다. 화교들은 세금을 다 내지만, 지금도 65살 이상 화교 노인은 지하철 무료 이용권을 받지 못한다. 장애인 차량도 이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화교들이 한국 땅에서 자장면을 발명한 것에 고마워할 일이다. 중국어로 ‘작장면’(炸醬麵)이다. 중국식 춘장을 볶아(작) 만든 면이란 뜻이다. 산둥성의 원조 춘장은 까맣지 않고 누런색이라고 여경래 주방장은 설명했다. 캐러멜을 넣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된장처럼 원조 춘장은 콩과 탄수화물(밀)로 만든다. 캐러멜이 한국 춘장을 검게 만든다. 칼럼을 쓰려고 마트에서 구입한 춘장도 마찬가지. ‘소맥분(미국산과 오스트레일리아산), 수입 대두 16.6%, 캐러멜, 정제소금, 주정, 종국, 효소처리스테비아(감미료)’가 성분이다.
인생의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글값을 빌어먹는 지금 내 인생은 누가 강요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매일 ‘이게 맞나’ 싶다. 처음부터 ‘이것밖에 없다’는 자각을 견뎌야 하는 건 축복이 아닐 것 같다. “인생의 답을 일찍 얻은 건 어쨌든 축복 아니냐”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한국인은, 없는 것 같다. 춘장 봉지를 뜯으며 ‘이번 칼럼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고 생각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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