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이 본명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이 꽤 많았나 보다. 오랫동안 그의 본명은 조문례 혹은 조춘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제법 그럴듯했다. ‘강수지’라는 이름이 본명이라면 외모부터 이름까지 ‘본 투 비 청순가련’이라는 얘기인데, 그건 아니길 바라는 심리 때문이었나 보다. 당시 흔치 않은 ‘수지’라는 이국적 이름을 가진 강수지는 ‘뉴욕 출신의 미국 교포 가수’라는 역시 흔치 않은 타이틀을 달고 가요계에 등장했다.
강수지는 1990년 작고 하얀 얼굴에 오똑한 콧날, 뾰족한 턱, 여기에 긴 갈색머리까지 휘날리며 무대로 사뿐히 걸어나와 “그대 모습은 보랏빛처럼 살며시 다가왔지 예쁜 두 눈에 향기가 어려 잊을 수가 없었네”라고 속삭였다. 노래 중간중간 팔을 살짝 들어 양쪽으로 찔러주는 듯한 율동(!)도 보여줬다. 1집 앨범 는 ‘청순가련’에 목말라 있던 당시 가요계를 보랏빛 향기로 적시기에 충분했다. 부터 시작된 강수지·윤상 콤비는 이어 등을 내놓았다. 강수지 특유의 깨끗하고 맑은 음색과 세련되고 절제된 윤상의 멜로디는 최고의 조합이었다.
미국에서 살던 강수지가 한국 가요계에 발을 내딛게 된 데는 탤런트 송승환의 구실이 컸다.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혼자 노래를 부르던 강수지는 1988년 MBC 대학가요제 미국 동부지역 예선에 참가해 자작곡인 로 금상을 받았다. 당시 미국 지역 예선 진행자가 송승환이었고, 강수지를 눈여겨본 송승환이 제작자로 나서 강수지의 1집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부잣집 외동딸일 것만 같던 강수지는 최근 TV 토크쇼에 출연해 미국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대해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망치듯 미국으로 건너가 어릴 때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강수지를 데뷔시킨 송승환이 ‘놓치고 후회한’ 가수가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이다. 송승환은 “실력은 뛰어났지만 당시 가요계가 원치 않는 얼굴이라 제작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바로 그 박진영이 키워낸 또 한 명의 수지가 있다. ‘미스에이’의 수지다. 2010년 로 데뷔와 동시에 1위에 오른 미스에이에서 ‘청순가련’을 담당하는 멤버가 바로 수지다. 광주 예선을 보러 갔다가 JYP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눈에 띄어 단숨에 연예인이 된 수지는 짧은 반바지를 입은 다른 멤버들과 다르게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린다. ‘만든 얼굴’이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 얼굴’을 가진 보기 드문(!) 걸그룹 멤버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다. 최근엔 한국방송 의 여주인공으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광주의 한 분식집 딸로도 유명한 수지도 본명이 배수지다.
강수지와 배수지, 수지라는 이름의 두 여자 연예인을 통해 본 아이돌 코드 수직이론을 정리해보자. 수지라는 이름을 본명으로 가진 청순가련형의 여자 연예인은 반드시 성공한다. 강수지는 1980~90년대 인 대학가요제에서, 수지는 현장에서 발탁돼 각각 송승환과 박진영이라는 탁월한 제작자들이 키워냈다. 당신이 음반 제작자이고 걸그룹이나 여자 솔로 가수를 키우고 싶은데 마땅한 지망생이 없다면 당장 오디션 현장으로 달려가볼 일이다. 가서 수지라는 이름의 여자를 찾아라. 그다음에 아낌없이 투자해라.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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