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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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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춰요 모두 앞에서”

등록 2011-05-06 15:07 수정 2020-05-03 04:26

“이태원 프리덤 저 찬란한 불빛 이태원 프리덤 젊음이 가득한 세상.” 유세윤과 뮤지로 구성된 UV가 최근 발표한 명곡 은 화려했던 1980~90년대 서울 이태원을 그린다. 당시 이태원은 미국에서 갓 넘어온 낯설고도 새로운 음악과 춤이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빛나던 곳이었다. 춤 좀 춘다는 이들은 이태원으로 몰려들었고, 이들은 처음으로 힙합의 세례를 받았다. 구준엽, 강원래, 이주노, 양현석, 현진영은 1세대 비보이로 속 주인공으로 꼽힐 만한 이들이다. 그들 중 현진영은 강원래와 구준엽을 백업댄서팀으로 구성해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이주노와 양현석은 서태지를 만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했다.

가수 현진영(위)과 박재범

가수 현진영(위)과 박재범

현진영이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사장이 길러낸 1호 가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현진영의 ‘시장성’이 어땠는지 짐작할 만하다. 1990년 이라는 공격적인 제목의 데뷔 앨범을 내놓은 ‘현진영과 와와’는 과 로 괜찮은 성적을 거뒀다. ‘와와’는 1기 강원래와 구준엽에서 2기 이현도와 김성재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클론’에서 ‘듀스’로 바뀐 셈이다. 1집 때 랩을 들고 나왔지만 그때만 해도 ‘소방차’스러운 의상과 ‘박남정’스러운 춤 때문에 그의 무대는 앨범 제목만큼이나 새롭지는 않았다.

2년 뒤 서태지와 아이들이 로 가요계에 랩 음악을 선보이며 파란을 일으켰다. 현진영도 뒤이어 그의 대표곡인 가 수록된 2집을 발매했다. 같은 랩이었지만 서태지와 현진영은 달랐다. 현진영은 헐렁한 청바지에 모자가 달린 후드티셔츠를 입고, 야구모자 위에 후드티셔츠 모자를 뒤집어쓴 패션으로 나타났다. 무대 위에서 팔과 다리를 사정없이 흔드는 안무는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바비 브라운의 무대나 크리스 크로스의 를 떠올리게 했다. 그만큼 현진영은 미국 대중음악의 경향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노력했다. 1992년 현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문화방송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탔다.

2009년 9월은 JYP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 ‘2PM’에게 힘든 한 달이었다. 멤버였던 박재범이 팀을 탈퇴했고 참 많은 말이 오갔다. 수많은 ‘미국 출신’ 아이돌 그룹 멤버 중 재범이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 출신 동포가 아니라 시카고에서 비보이로 활동한 동포였기 때문이다. 재범은 외모부터 행동, 춤까지 가장 미국 ‘본토스러운’ 아이돌 그룹 멤버였다. 결국 그 가운데에서 불거진 문제가 그를 탈퇴에까지 이르게 했지만 재범이 무대에서 보여준 춤은 가수 지망생이 연습실에서 익힌 몸짓 그 이상이었다. 재범은 탈퇴 이후 미국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한 B.o.B의 (Nothin’ On You)를 피처링하며 다시 한번 그의 ‘본토스러움’을 보여줬다.

이쯤에서 아이돌코드 수직이론을 정리해보자. 댄스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은 비보이 출신 남자 솔로 가수는 성공한다. 미국 대중문화와 힙합 음악을 즐겨온 이들이라면 백발백중 성공한다. 현진영은 이태원에서, 재범은 미국 시카고에서 비보이로 활동하며 댄스경연대회 등에서 입상하곤 했다. 힙합 음악과 춤, 두 가지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무기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불러보자. “춤을 춰요 모두 앞에서 꿈을 꿔요 여기서 모두 사랑해요 모두 앞에서 노래해요 이태원 프리덤.”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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