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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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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자 출신의 매력적인 중저음

등록 2011-06-17 10:25 수정 2020-05-03 04:26
가수 존박(왼쪽)과 이현우. 엠넷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가수 존박(왼쪽)과 이현우. 엠넷 제공, 한겨레 자료사진

1991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의 책받침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온 연예인이 있었다. 마이크를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몸을 건들거리며 “두 눈을 감으면 꿈처럼 다가오는 너의 모습을 내 마음 깊은 곳 새하얀 캔버스에 그려보네”를 부른 이현우였다.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에 친구에게서 전화로 “이현우 오빠가 대마초로 잡혀갔대”라는 얘길 전해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빠심’을 불태웠던 유일한 연예인이 이현우였다. 펑펑 울 만큼 멋지게만 보였던 유일한 연예인이 이현우이기도 했다.

이현우는 1집 로 데뷔해 등 히트곡을 내며 순식간에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현우는 1990년대 초 강수지·박정운 등과 함께 ‘역이민’ 가수로 불렸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한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가수로 데뷔한 이현우는 세련된 ‘뉴요커’ 이미지가 강했다. 도입부에 들어간 영어 랩을 ‘본토 발음’으로 읊조리고, 놀랄 만큼 느릿느릿 말을 하고, 살짝 웃는 것 외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초등학생 여자애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남달랐던 건 그의 목소리다. 마치 동굴에서 울려퍼지는 듯 낮고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는 고음으로 승부하던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를 두고 ‘대단한 가창력의 소유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현우는 분명히 ‘매력적인 목소리의 소유자’다. 1집 이후 대마초 파동 등으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이현우는 지난 20년 동안 놀랄 만큼 정기적으로 앨범을 내왔다. 그중에는 처럼 대단한 히트를 기록한 앨범도 있었고, 나왔다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 앨범도 있었다. 이현우가 ‘실장님’으로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앨범을 내며 음악을 해왔다는 사실은 1990년대 초에 데뷔한 다른 가수들의 행보와 비교할 법하다.

중저음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또 한 명의 가수가 있다. 결승에 올랐던 존 박이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톱20에 들 만큼 미국에서도 주목받고 라는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돌아온 존 박도 매력적인 중저음을 지녔다. 외모도 준수하고 매너도 있고 학벌도 좋은 ‘엄친아’스러운 이미지가 인기의 주된 요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존 박을 특별하게 만든 건 그의 목소리였다. “고음만 연습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주는 좋은 가수”라는 심사위원 윤종신의 평도 그런 맥락이다.

‘미국 이민자 출신으로 중저음을 주무기로 한 남자 가수는 성공한다’는 것이 이번주 아이돌 코드 수직이론의 결론이다. 더 없느냐고? 없다. 정말 없다. 다만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과연 ‘존 박이 아이돌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다. 존 박을 지금 가요계에서 말하는 ‘아이돌’의 범주에 넣는 건 무리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존 박은 출신이니까 아이돌로 인정! 덧붙이자면, 요즘 아이돌 중에는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를 가진 이가 없다. 판에 박힌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으로 ‘훈련된’ 이들뿐이라는 게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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