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 아이돌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무대는 때때로 ‘남자’를 그리워한다. 뒤로 빗어넘긴 머리에 가죽 재킷을 입고 ‘라이방’이라고도 불리는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기타와 마이크를 앞에 놓고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내는 그런 ‘남자’ 말이다. 그때마다 가요계에는 솔로 남자 가수들이 등장했다. 1990년 데뷔한 심신은 그 첫 번째 타자였다.
1990년대에는 흔치 않던 183cm 키의 심신은 CF 모델 출신다운 남성적인 라인의 소유자였다. 대전에서 6인조 록밴드 ‘외인부대’의 리드보컬로 활동하다가 가수로 데뷔한 그는 1집 수록곡 와 로 단박에 여고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데뷔 초에는 발라드곡이던 에 어울리는 젠틀한 남자였다. 그러나 가 인기를 얻자 그는 점잖은 양복을 벗어 던졌다. 심신은 에서 후렴구 “그대여 그 마음속에 이대로 나를 담아둘 수 없는가 그대여 이 아름다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대”를 부를 때 쌍권총을 쏘듯 손가락으로 팬들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다리를 ‘쩍벌’리고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검은색 선글라스로 눈빛을 가린 채 굵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그때의 심신은 당시 그 어떤 남자 가수들보다 ‘진짜 남자’였다.
2집에서는 그 이미지의 연장선에 있던 가 ‘대박’이 났다. 가사와 곡, 그리고 심신의 이미지가 묘하게 어우러진 곡이었다. 가사에는 ‘새침’ ‘투정’ ‘작고 귀여운 욕심쟁이’ ‘달콤한 사랑’ ‘어여뿐 욕심쟁이’ 등 진짜 남자의 입에서 나왔으리라고는 좀처럼 믿기 힘든 단어가 전진 배치돼 있다. 이 곡으로 심신은 ‘나에게만 잘해주는 짐승남’이 됐다. 게다가 청순가련의 대명사 강수지와의 열애설은 당시 최고 남녀 가수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여고생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래, 그는 진짜 남자였다.
남자 아이돌 ‘짐승남’ 열풍이 불었지만 제아무리 날고 기는 짐승남들도 무대 위에 홀로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하는 남자 솔로 가수가 보여주는 그 기운에 미치지 못한다. ‘씨앤블루’의 정용화는 스탠딩 마이크 앞에서 현란한 손기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적당히 느끼한 목소리를 연출해낸다는 점에서 심신이 얼핏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밀크남’의 냄새가 짙다. 그런데 최근 전성기 때의 심신이 보여줬던 남성적인 매력을 무대에서 보여준 이가 몇몇 있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엠넷 의 강승윤과 문화방송 의 조형우다. 강승윤이 삐딱하게 모자를 쓰고 를 부르던 무대에서 간만에 남자 솔로 가수만이 보여주는 그 기운을 보았다. 강승윤에 비해 조형우는 얌전하지만, 좀더 거칠게 좀더 자신 있게 노래한다면 그에게도 가능성은 있다. 대형 기획사에서 아이돌 그룹을 찍어내는 가요계 시스템으로는 홀로 무대를 지배하는 남자 가수를 키워내기 힘들다. 오디션 프로그램 덕에 누군가의 손에 ‘길러지지’ 않은, 테스토스테론을 잃지 않은 남자 가수를 볼 수 있다.
이번주 아이돌 코드 수직이론은 의외로 이들의 턱선에서 찾아냈다. 심신-강승윤-조형우는 레이밴 선글라스가 참 잘 어울리는 계란형 혹은 ‘브이’(V) 라인 얼굴형이다. 턱선이 잘 빠진 솔로 남자 가수는 성공한다. 까만색 가죽 재킷이 찰싹 달라붙는 스타일까지 가졌다면 두말할 필요 없다. 턱선이 잘 빠진 ‘진짜 남자’들이여, 어서들 접수하시라. 과 , 또 진짜 여자들이 그대를 기다린다.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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