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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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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0대의 안전한 반항

청소년 사이에서 간지나는 아이템, 재력의 상징, 권위의 조롱으로 자리잡은 전자담배… 교사 눈을 피하기 쉽고 금연이란 변명도 있어 안전한 선택
등록 2011-04-29 17:14 수정 2020-05-03 04:26

지난해부터 슬금슬금 등장하더니 ‘전자담배’가 교실문화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발암성 물질이니 부작용이니 해서 일부 제품이 판매 금지되긴 했지만, 전자담배는 익숙해지면 일반 담배를 다시 피울 때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애초에는 금연보조제 기능으로 각광을 받았다. 일반 담배와 달리 담배 특유의 타르와 악취가 없는 것도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0대 중 ‘얼리어답터’들도 아마 이런 기능성 때문에 전자담배를 찾지 않았겠나 싶다. 호기심에서 시작했건 ‘간지’ 때문에 시작했건, 흡연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게 자명한 사실 아니던가. 담배 냄새가 적은 것도 매력포인트다. 골초 같은 악취로 ‘찌질함’을 노출하는 것보다야 깔끔하게 사는 게 훨씬 ‘있어 보인다’. 여러모로 전자담배는 최적의 선택인 셈이다.
그런데 이 물건이 하나의 유행 형식으로 자리잡아가자 이색적인 풍경이 등장했다. 금연을 목적으로 전자담배를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담배 흡연을 계속하면서도 전자담배를 피우는 모습들이다. 게다가 교실 안에서, 그것도 수업 시간에 전자담배를 피운다. 교사가 판서를 하려고 학생들에게서 등을 돌릴 때 흡연자는 한 모금 빨고 숨을 내뱉는다. 예전 10대가 도시락을 몰래 까먹었던 것만큼이나 흥미롭고도 위험한 게임이 펼쳐지는 것이다. 특히나 일진(이고 싶어하는) 남학생들에게 전자담배는 매력적인 물건이다.
바로 그 순간 또래 사이에서는 다양한 의미가 생산된다. 보통 ‘통판’(통신판매의 준말)으로 구매하는 전자담배의 가격은 대략 15만원 정도다. 그렇기에 전자담배는 구입한다는 것만으로도 재력의 상징으로 통할 수 있다(어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과 목동 등의 학생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는 자신의 용돈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거나, 아니면 ‘엄카’나 ‘아카’(곧, 엄마카드나 아빠카드) 정도는 원하는 대로 동원할 수 있다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용돈이나 엄카, 즉 주어진 돈으로 구입한 게 아니라면 과시적 소비의 효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이 된다. 적어도 알바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또래와 달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 나이에 비해 더 성숙했다는 우월감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삥 뜯어서’ 구입한 경우가 되는데, 이 경우에도 전자담배는 또래 내부에서 힘을 과시하는 상징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 ‘아이템’을 수업 시간에 장착한다는 것은 기성세대에 순응하는 무력한 모습이 아니라 권위에 균열을 내고 조롱하는 의미마저도 담게 된다.

이 주술적 아이템은 여타의 일탈적이고 반항적인 행위들보다도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기도 하다. 마치 다이어트 콜라나 디카페인 커피처럼, 전자담배는 신체적으로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담배 같은 것으로 인식된다. 게다가 모양새가 만년필 같아서 필통에 넣고 다니기에 안성맞춤이고 흡연할 때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에 교사들의 눈을 피하기에도 제격이다.

실제로 전자담배가 교실에서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이 물건을 발견한 대다수 교사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10대의 이 신종 아이템이 담배지만 담배가 아니기도 하다는 점, 담배지만 담배를 끊기 위한 것이라는 점 때문에 해당 학생을 쉽사리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속된 학생은 그저 조금은 퉁명스럽게 “이거, 담배 아닌데요”라거나 “담배 끊으려고 피우는 건데요” 하면 자신의 사회적 신체를 보전할 수 있었다.

전자담배의 불온성이 교육 현장에서 점차적으로 알려지게 되자 단속과 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렇지만 10대는 반항의 공간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어김없이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다. 그것이 굳이 전자담배가 아니라도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일체의 규범적 판단은 일단 물리고,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던져보자. 10대의 반항이 왜 하필 전자담배라는 아이템으로 귀결된 것일까. 전자담배의 상징성은 일견 반항적이지만 비교적 안전‘빵’이고 자기보존적이다. 권위를 조롱하되 치기 어린 반항 정도로만 보인다. 반면 그들에게서 (자기파괴적일지라도) 저항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문화적 창조성이 대개 일탈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지금 10대의 선택은 ‘아직’ 덜 위험한 것은 아닐까.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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