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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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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갓 서바이벌

채널만 돌리면 나오는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에게 노출되는 2011년판 ‘트루먼쇼’
등록 2011-03-04 11:20 수정 2020-05-03 04:26

커다란 홀에 환하게 불을 켠 방들이 가득하다. 오른쪽 방 문을 열면 40대 남자가 네 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엽기적인 표정과 함께 마술쇼를 펼치고, 다른 방 문을 열면 진지한 표정의 20대 남자가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연기에 여념이 없다. 왼쪽 끝 방에는 카메라 앞에 앉아 뉴스 원고를 읽는 아나운서 지망생이, 그 옆 방에는 패턴 디자인에 열심인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이 있다. 발라드부터 댄스음악, 오페라까지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방은 수없이 많다.

문화방송 < 위대한 탄생 >

문화방송 < 위대한 탄생 >

〈슈퍼스타K 2〉의 ‘충격적’ 성공 이후

지금의 TV 시청자는 이 커다란 홀을 거니는 산책자다. 마음에 드는 방문을 열어 참가자들이 펼치는 노래부터 연기까지 감상하다가 마음에 드는 참가자의 번호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낸다. 또 다른 방을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 방에서인가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가 “꿈을 이뤘다”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시청자의 역할은 산책에서 그치지 않는다. 언제든 마음에 드는 방에 들어가 그 방에서 펼쳐지는 오디션에 참여할 수 있다. 물론 조금 전 들었던 그 환호성 대신 고쳐야 할 점에 대한 지적만 잔뜩 듣고 나오겠지만.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위) /온스타일 제공(아래)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위) /온스타일 제공(아래)

TV가 서바이벌 오디션에 ‘미쳤다’. 문화방송의 과 온스타일의 이 현재 방송 중이고, 방영 예정표에 올라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 형식의 프로그램만 7편이다. 문화방송 의 새 코너 ‘신입사원’과 ‘나는 가수다’, 연기자를 뽑는 SBS , tvN , 엠넷 〈슈퍼스타K 3〉, 아리랑TV 등이 올해 상반가와 하반기에 방영 예정인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질세라 한국방송도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방송사에서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 보도자료를 낸다. 케이블이 불을 지핀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는 공중파에서 기름을 붓고 또다시 케이블에서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그야말로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 세상이다.

방송계의 판도를 바꿔놓은 주인공은 지난해 방영돼 대성공을 거둔 엠넷 〈슈퍼스타K 2〉다. 그 전에 〈슈퍼스타K 1〉도 있었고 도 시즌2까지 방송됐지만, 누가 뭐래도 이변의 주인공은 〈슈퍼스타K 2〉였다. 케이블에서 14.5%(TNmS 기준)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이 프로그램은 2010년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였다. 한 방송 관계자는 “지상파에서 몇 차례 시도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어내지 못했던 오디션 형식으로 대단한 파급력을 얻어낸 〈슈퍼스타K 2〉의 성공은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충격이나 다름없었다”며 “웃음과 눈물, 긴장감과 이야기까지 있는 〈슈퍼스타K 2〉를 모델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지시가 각 방송사마다 넘쳐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부랴부랴 방송을 시작한 문화방송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은 ‘짝퉁 〈슈퍼스타K 2〉’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서서히 반응을 얻고 있는 은 최근 078연장 방송이 결정됐다. 방송가에서는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는 어떻게든 된다”는 말이 돈다.

기업에서도 적극 러브콜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가 ‘대세’로 떠올랐지만 영미권에서는 ‘조금 지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트렌드다. “오디션 프로그램 붐은 우리나라만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미국·유럽·중국 등 세계적인 현상이며, 나라를 불문하고 지금의 시청자는 방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한다”는 문화방송 김영희 PD의 말처럼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는 전세계 방송계의 ‘트렌드’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위) /문화방송 제공(아래)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위) /문화방송 제공(아래)

〈슈퍼스타K 2〉 이후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재빠르게 외국으로 눈을 돌려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는 프로그램 포맷을 들여오기 시작했다. tvN이 올해 론칭하는 두 개의 프로그램 와 은 모두 원산지가 영국이다. 는 ‘갓 탤런트 시리즈’로 불리며 여러 나라에서 제작되는 프로그램의 한국판으로, 가수를 포함해 마술이나 연기, 춤, 악기 연주 등 모든 분야에서 재능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기존 대중가수가 오페라가수에 도전하는 은 가장 ‘따끈따끈’한 프로그램이다. 영국에서 지난해 시즌1을 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의 프로그램 판권을 사와 제작한다. tvN 이덕재 국장은 프로그램 기자간담회에서 “프로인 대중가수가 오페라에 도전하면서 아마추어가 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페라’라는 낯선 장르가 시청자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 또 국내 시청자의 입맛이 세계적인 트렌드에 얼마나 빨리 따라갈지는 미지수다.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는 기업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장르로 자리잡았다. 특히 케이블은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기업의 이름이나 상품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미션을 진행할 때 기업과 함께 기획해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마케팅 콘셉트를 살린 미션을 참가자들에게 주기도 하고, 미션 우승자에게는 후원 상품을 ‘쏜다’. 우승자에게 부상으로 주는 자동차 등의 상품 역시 프로그램 내내 수없이 반복해 소개되면서 괜찮은 효과를 거둔다. 우승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 출연자의 모습을 통해 해당 상품의 핵심 요소를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기업에는 무엇보다 장점이다. 그래서 ‘될 법한’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에는 기업이 먼저 러브콜을 보낸다. CJ미디어 관계자는 “의 경우 방송 시작이 6월인데 벌써부터 기업으로부터 광고 요청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기업과 적극적으로 손잡기도 한다. 지난 2월24일 서울 서초구 아리랑TV의 스튜디오에서는 ‘취업 서바이벌’을 표방한 신설 프로그램 의 첫 번째 녹화가 한창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서류 접수와 사전 예선을 통해 8명을 선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4주에 걸쳐 퀴즈와 토론, 미션 수행, 면접, 프레젠테이션 등을 통해 우승자를 가린다. 우승자는 기업에 정규 채용된다. 매달 한 명씩 기업에 들어가게 되는 셈이다. 첫 번째 참가 기업은 LG생활건강. 이날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첫쨋주 퀴즈쇼 두 번째 라운드에는 익숙한 제품 이름이 등장한다. “이자녹스 등의 제품은 어떤 마케팅 전략을 사용합니까?” 네 개의 보기 중 정답은 ‘매스티지’다. 의 연출자인 김중식 PD는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고 홍보로도 이용할 수 있어서 프로그램 참여를 선호하는 기업이 꽤 있다”며 “국내·외국계·중소기업을 골고루 배치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 관련 퀴즈는 기업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기업과 관련된 상식 문제”라며 “실제 입사 형식과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고 덧붙였다.

“탈락한 장면 편집해달라”

지난 1월28일 열린 문화방송 기자간담회에서 문화방송 최재혁 아나운서국장이 ‘리얼리티쇼 오디션-내가 아나운서다’라고 쓰인 서류뭉치를 들어 기자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에 김진만 PD와 제가 두 달간 만들어보고자 했던 프로그램이다. 세부 일정까지 짰지만 2007년 상황으로는 제작에 어려움이 많았다.” 신동호 아나운서 역시 “새로운 기획도 아니고 이미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프로그램에 대해 충분한 기획과 검토를 해왔다. 여러 가지 상황이나 시류가 잘 맞아 창사 50주년 기획으로 아나운서국과 예능국의 공동 기획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과 시류’가 4년 전 보류된 기획안을 이제야 책상 위로 꺼내올렸다.

문화방송이 야심차게 내놓은 은 문화방송의 아나운서를 뽑는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다. 이 프로그램은 문화방송이 실제 아나운서를 뽑는 과정을 바탕으로 오디션을 구성하고 우승자를 정식 채용한다. 최 아나운서국장은 간담회에서 “하수구 배관공이 우연히 ‘신입사원’ TV 광고를 보고 아나운서가 되는 생각을 해본다”며 “정형화된 아나운서가 아닌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운 아나운서를 뽑겠다”고 말했다. 문화방송은 남녀노소를 불문한 모든 이들에게 아나운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고, 5천여 명이 이에 지원했다. 하루 동안 진행된 카메라 테스트를 통과한 1차 합격자는 300여 명으로 추려졌다. 아나운서 채용 과정 자체가 예능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예상외의 곳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오디션 지원 동의서의 내용이 문제였다. ‘MBC가 나의 초상과 모든 자료들을 이용할 수 있으며,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계약할 수 있다’ ‘MBC는 나의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신체적·정신적 손상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해야 할 의무가 없다’ 등의 내용이 들어 있는 동의서는 “채용 관련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하는데 이런 부분까지 동의해야 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문화방송 쪽은 “좀더 신중한 방송을 위해 미리 내용을 고지하고 동의서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1차 합격자가 발표된 뒤 관련 게시판은 탈락자들의 글로 도배됐다. 글의 내용은 동일하다. ‘탈락했는데 방송에 내 모습이 나가면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곤란해지니 편집해달라.’ 이에 대해 “동의해놓고 무슨 얘기냐”는 의견과 “실제 현실에서 받을 불이익을 생각해봐라”는 의견이 부딪힌다. 지원하기 전에 꿈꿨던 ‘기적’은 탈락과 함께 직장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는 ‘현실’이 된다.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의 또 다른 얼굴이다.

〈슈퍼스타K〉나 같은 케이블 리얼리티쇼는 프로그램 참가자들, 특히 탈락자들의 불만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슈퍼스타K〉는 시즌1과 시즌2에 걸쳐 예선에서 탈락하자마자 “내보내지 말라”며 화를 내고 사라지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방송된 시즌3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김태희가 입을 옷을 만들라는 미션에서 탈락한 참가자가 이런 말을 남겼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이 미션에서 떨어졌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어요, 난. 나한테 맞는 미션 한 번도 못해보고 가는 거잖아요. 저는 디자이너로서 어떤 이미지가 생기겠어요. 너무 비난만 받고, 사람 하나 병신 만든 것 같잖아요. 내가 왜 여기에서 병신이 돼야 해. 어쨌든 꿈을 찾아서 도전을 한 거니까 계속 나아갈 거고, 나중에는 내가 더 잘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연출자인 이우철 PD는 “출연 동의서를 쓰지만 방송이 나간 다음 간혹 전화로 불만이 있다거나 아쉽다고 말하는 출연자도 있다”며 “입장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있고, 그걸 줄여나가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 PD는 또 “시즌3까지 진행하면서 탈락자들을 지켜보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인데, ‘내가 떨어질 만한 수준인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과 ‘이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반응”이라며 “프로그램 시작 전에 참가자들에게 여기에서 첫 번째로 떨어지든 우승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와, 이 프로그램이 본인에 대한 시험이고 본인이 나아갈 길을 쌓는 시간이라는 얘기를 꼭 한다”고 말했다.

우후죽순 서바이벌쇼들의 서바이벌

‘전성기’를 맞은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가 국내에서 장수할 수 있을까? “한동안은 드라마를 대체하며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국내 방송 특성상 오래가지 않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에 관한 논의는 잠시 미뤄도 좋을 것 같다. 프로그램끼리의 서바이벌 리얼리티쇼나 다름없을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 상반기 시청률 성적표를 보고 난 이후에도 늦지 않을 테니까. 서바이벌 오디션 리얼리티쇼의 우승자는 누가 될까?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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