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 줄여서 한기총은 한국 사회에서 몇 안 되는 ‘성역’이다. 1989년 12월 출범할 때 한기총은 “모든 개신교 교단과 개신교 연합단체 및 교계 지도자들이 한기총에 참여하여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교회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데 일체가 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출범 당시 36개 교단으로 시작해 지금은 무려 66개 교단이 속한 개신교계 최대 단체로 성장했다.
지난 20여 년간 한기총은 거대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현재 길자연 대표회장 체제의 한기총은 교회와 연합, 선교와 국제 등 4개 분야에 걸쳐 21개 상임위원회에 27개 특별위원회를 두고 있다. 한기총이 몸집만 부풀린 것은 아니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등 개신교 진보세력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한기총은 특히 정권 교체가 이뤄진 1998년 이후 한국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보수(혹은 극우)적 목소리를 대변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왔다.
정치적 영향력 확대는 한기총의 성역화로 이어졌다. 한기총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고, 문제를 알아도 비판할 사람이 없다. 감시와 비판이 사라진 공간에는 당연히 부패가 존재한다.
전임 대표 “돈 써서 당선됐다”
최근 불거진 한기총 ‘돈선거’ 파문만 해도 그렇다. 이광선 전 대표회장과 길자연 신임 대표회장이 양쪽으로 편을 갈라 펼치는 폭로 대항전이 점입가경이다. 선제공격을 시도한 쪽은 이광선 목사(신일교회)였다. 지난 2월9일 교회의 금권선거 관행을 지적하며 그는 “나도 돈을 써서 당선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2009년 대표회장 선거에서 당선해 지난 1월 길자연 신임 회장이 취임하기 전까지 한기총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이 목사의 폭로에 이어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쪽 목사 일부가 “대표회장 선거 과정에서 돈을 받았다”며 거들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은 길자연 목사와 가깝다. 한기총 내부의 헤게모니 싸움을 넘어 구조적 모순까지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정권 교체를 둘러싼 세력 간 암투와 폭로, 금품 수수 등 한기총의 부패상은 교회가 아닌 세속을 떠올리게 한다. 세속이라도 비판과 감시가 살아 있는 집단이라면 최근의 한기총처럼 진흙탕 싸움에 몰두하진 않는다.
개신교계 안팎에서 번지고 있는 한기총의 개혁 및 해체 요구는 그런 점에서 필연에 가깝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한기총 해체를 위한 개신교인 서명운동’이 이미 시작됐다. 다음 아고라를 통해 서명운동을 제안한 네티즌 ‘미스터리 블루’는 “현재의 개신교 단체는 정치 및 돈과 야합하며 몸집을 키우는 이권 단체”라고 주장한 뒤, ‘한기총이 현재의 타락을 인정하고 자진 해체할 것’과 ‘한기총에 소속된 각 교단이 스스로 한기총을 탈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3월11일 현재 여기에 서명한 사람 수는 3200명을 넘었다.
한기총 내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이후 길자연 회장 인준 무효를 주장해온 ‘한기총 개혁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3월9일 조직을 ‘한국 교회와 한기총 개혁을 위한 범대책위원회’(범대위)로 확대 개편했다. 범대위는 최성규·이광선 두 명의 전 대표회장이 공동대표위원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범대위는 이날 ‘한국 교회에 드리는 글’을 통해 △한국 교회와 한기총을 부끄럽게 한 길자연 목사의 사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칼빈대(길자연 목사가 총장으로 있던 대학) 종합감사 결과를 즉시 발표할 것 △각 교단과 단체는 침묵하지 말고 개혁에 적극 동참할 것 등 세 가지를 요구했다. 이 가운데 두 번째 요구 사항과 관련해 범대위는 “길자연 목사는 총장으로 재직할 당시 여러 가지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며 “교과부 장관은 칼빈대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속히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기총 해체’ 주장은 진보적 개신교 단체의 연합인 ‘한기총 개혁을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개혁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이 주축이 된 개혁 네트워크는 3월3일 금권선거 파문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한기총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개혁 네트워크는 3월11일까지 한기총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답변이 없을 경우 자신들과 뜻을 함께하는 개인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기총 해체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한기총이 여기에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한기총이 개혁 네트워크 등 교계 안팎의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우리라는 사실이다. 개혁 네트워크 관계자는 “한기총이 개혁을 요구하는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열기 바라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해체 운동 등 다음 절차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기총이 오늘날 이처럼 교계 안팎의 거센 도전에 직면한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최근 돈선거 파문이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돈선거 문제만 놓고 본다면 이를 어제오늘의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교계 내부에서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나가려면 적어도 수십억원은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 정도였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개신교 매체인 김종희 편집장은 한기총이 직면한 위기는 더 복합적이라고 진단했다. “한기총에 대한 잠재된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본다. 더 넓게 보면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한기총은 어렵고 소외된 약자를 대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억압하는 논리를 제공해왔다. 한기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마당에 돈선거가 불거진 것이다. 그동안 침묵해온 온건한 목회자까지 ‘보수적인데다 부패했다’며 한기총에 등을 돌리고 있다.”
실제로 최근 1년여 동안 한기총이 걸어온 발자취만 돌아봐도 한기총이 과연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단체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2월 한기총은 사형제도 위헌법률심판을 앞두고 있던 헌법재판관에게 ‘사형제 폐지에 대한 한국 교회 입장’이라는 문서를 보내 사형제 유지를 권고했다. 당시 한기총은 성명서를 통해 “인간은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이므로 어떤 사람이 고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경우에는 사형이 시행되도록 하나님이 명령했다”고 주장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줄곧 “세속적으로 보면 인간 존중에서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성서적·신앙적 입장에서는 그 누구의 생명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과 뚜렷이 대조되는 입장이었다. 한기총의 사형제 유지 논리는 반성서적 궤변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11월26일 오후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진 뒤 한기총이 주최한 ‘구국기도회 및 연평도 도발 북한 규탄대회’도 기독교 정신을 거스른 사례로 꼽힌다. 이날 기도회에서는 주로 ‘무력도발 강력하게 응징하자’ 등 호전적 구호가 등장했다. 아울러 한기총은 북한을 위한 식량보내기 모금 중단을 선언하며 “군은 모든 전선에 공세적으로 첨단 화력을 증강 배치하라”고 촉구했다.
한기총의 진면목을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은 지난해 5월 이 단체가 주도한 ‘천안함 건조 모금과 국민 대단합을 위한 국민대회’다. 서해에서 침몰한 해군의 천안함을 국민의 성금으로 재건조하는 데 개신교 단체가 앞장서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용섭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은 이를 가리켜 ‘엽기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정 원장은 월간 2010년 8월치에서 “한기총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외면했다”며 “주적을 대적하기 위해서 그들은 평화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마저 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에 눈먼 목회자의 싸움터”
한기총이 기독교적 가치와 거리가 있는 정치 행사에 집중한 것은 한기총의 입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한기총의 22회기(2011년) 총회보고서를 보면 한기총 소속 66개 회원 교단은 신자 1248만1682명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기총의 통계는 교계 내부에서조차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국 교회의 교세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기총의 ‘정치’가 기독교적 가치와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국 교회가 정치적 편향과 수구적 이념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교회는 교회여야 한다. 교회가 정치나 이념의 주구 노릇을 하게 되는 순간 교회의 생명은 끝난다.”(, 김선주, 2009)
개혁 네트워크도 지난 3월3일 한기총에 보낸 질의서에서 한기총의 ‘정치’를 비판했다. 개혁 네트워크는 질의서를 통해 “한기총은 순수 복음단체를 표방하며 출범했으나 실상은 특정 정치이념을 추구하는 단체였고, 권력에 눈먼 목회자의 싸움터였다”며 “한기총은 이에 대한 개선 계획은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기총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개신교계 안팎에서 번지고 있지만 한기총이 크게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한기총을 이끌고 있는 길자연 대표회장은 3월3일 열린 한기총 실행위원회에서 한기총 해체 주장을 일축했다. 길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6∼7년간 한기총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만 가득했다”면서도 “한기총의 개혁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해체를 운운하는 것은 언어폭력이고 언어도단”이라고 말했다.
김종희 편집장의 전망도 비슷하다. 김 편집장은 “한기총 개혁이나 해체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한기총 자체적으로는 큰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한기총에 실행위원을 파송하는 각 교단에서 한기총 개혁을 위한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교단 차원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교단 모임인 미래교회포럼준비위원회에서 지난 2월28일 성명서를 내고 한기총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하며 해체를 공식적으로 촉구했다. 개혁 네트워크도 3월11일 이후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개혁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남오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목사)은 “한기총이 구체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3월 말 예정하고 있는 한기총 해체를 위한 대토론회를 시작으로 해체 서명운동과 회원 교단을 대상으로 하는 한기총 탈퇴 운동,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한 대국민 선전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기총을 압박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개혁안 제시 안 하면 해체운동 본격화
1989년 출범 이후 한기총이 개신교계 최대 단체로 성장해온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한기총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851호 표지에 실린 사진은 한국 사회에서 한기총이 차지해온 위치를 대변하고 있다. 길자연 한기총 대표회장이 서서 기도를 이끄는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런 한기총이 지금 내부 분열과 해체론에 직면해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