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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 수업은 왜 사라졌을까

미국 대학 교육의 기업화 과정을 추적한

클라이드 바로우의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등록 2011-01-28 11:30 수정 2020-05-03 04:26

대입 수험생들은 명절이 싫다. 추석에는 어느 대학 갈 거냐, 설에는 어느 대학에 갔느냐는 친척들의 인사치레는 그들에게 인사 아닌 뾰족한 스트레스다. 바야흐로 ‘어느 대학 갔느냐’의 계절이다. 그러나 대입에 성공한 수험생도 예처럼 기세등등하진 못하다. 어깨를 짓누르는 대학 등록금은 입학마저 주저토록 하거나 오래 정든 집 혹은 미래를 담보로 은행에 손을 벌리게 한다.

이용가치 없는 학문은 가라?

지난 1월18일 서울대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교수·교직원들이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 교내를 돌며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한겨레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1월18일 서울대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 소속 학생·교수·교직원들이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대 교내를 돌며 ‘서울대 법인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한겨레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학문 수양의 대가로 비싼 돈을 치르게 된 데는 캠퍼스에 스며든 기업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국립대 기업화의 첨병 격인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운영법’(서울대 법인화법)은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의 날치기 예산안 통과에 묻어 스리슬쩍 통과됐다. 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대학에 더 많은 자율을 준다는 것이 명목이다. 내세운 이유가 허울에 불과할지 합당한 것인지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다트머스대학 공공정책학과 교수인 클라이드 W. 바로우의 (문화과학사 펴냄)로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우는 미국 대학 교육의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읽기로 한다. 중첩된 과거가 쌓아올린 결과물이 현재를 낳았으니 거슬러 올라가 그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894년부터 1928년까지의 미국 대학을 조명한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도 당시 역사를 톺아보면 획을 그을 만한 중대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쯤은 떠올릴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미국 대학들은 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쟁 준비에 동원됐고, 군산학복합체 형성에 교수와 학생이 동원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활용됐다. 미국의 세계 패권화 움직임에 교수들은 나팔수로 이용됐다. 미 정부는 세계 어느 곳에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면 평화의 수호를 위해 그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미국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교육자와 학자들이 여론을 안정화하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교수들은 참전을 포장하고 대중화하는 일을 떠맡아야 했다.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그러나 국가에 이용당한 대학은 전후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학생들의 군 입대로 등록생 감소가 20~50%에까지 이르렀다. 설상가상 학생육군훈련단의 훈련 비용까지 학교가 떠안아야 했다. 적자에 시달리게 된 많은 대학이 파산 직전에 기댄 것은 기업이다. 꾸준한 학문의 금자탑을 쌓기에는 발등에 떨어진 적자가 급했다. 기업의 운영 방식을 대학 행정에 고스란히 옮겨오거나 산업체 협업을 통해 돈 되는 일을 찾았다. 수년의 전쟁과 이로 인한 파산 위기를 통해 미국 대학들은 이상한 논리를 깨우쳤다. 훈련, 기술의 신속한 습득, 전체주의적 합의와 동원, 경쟁과 효율. 학문 정진과는 상관없다고 여겨지던 단어들이 속속 대학을 채우기 시작했다.

전쟁과 상관없는 내부적 원인도 있었다. 당시 미국의 교육부는 주정부나 주 산하 지방정부에 귀속돼 있었다. 연방정부 차원의 교육부가 없었으므로 막강한 재력을 가진 카네기 교육재단과 록펠러가 설립한 일반교육재단 등이 전국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효율’을 강조하며 미국의 대학을 기업형으로 개조하는 터전을 마련한 게 바로 이때다. 기업은 대학의 자율을 축소하고 많은 교수를 해직했다. 1929년 ‘과학촉진을위한미국협의회’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교수들이 받기를 원하는 월급의 최대치는 일반 세일즈맨 월급의 평균치 혹은 제조공장 현장 간부에게 지급되는 만큼이었다. 대학교수들은 ‘전문직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고, 연구 활동 또한 정년보장 문제 등 걸림돌에 부딪혀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기업은 생산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기업이 지배하는 대학에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학문은 도태돼야 한다. 기업의 눈에 고전과 인문학은 교양과목 중에서도 가장 비효율적이었다. 몇몇 소수의 대학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에서 그리스어·라틴어·고전문학 수업이 폐지됐다.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여러 전공들은 재구조화하거나 통합됐다. 기초 학문의 빈자리는 당시 돈을 낳는 학문이었던 공학 강좌가 채웠다. 1910년, 하버드대학의 총장이자 카네기재단의 이사였던 로웰은 인문학자들이 과학적·효율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다면 더 많은 물질적 보상, 더 많은 연구비, 더 많은 승진 기회, 더 높은 명성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식인들은 고결한 학문 수양이 아닌 생존을 위해 연구 방향을 틀어야 했다.

바로우는 앞에서 언급한 시기와 유사한 성격의 사건들이 뒤이은 1929년부터 1962년, 1963년부터 현재까지, 세 주기를 반복해왔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대학의 자율성이 국가와 기업에 의해 점차적으로 통제돼왔다. 같은 형태의 역사가 30여 년 주기로 반복되면서 재정 및 행정적 운영에서 기업이 강조하는 사회적 효율성에 따라 대학이 변화하고 종속돼왔다는 것이다.

기업화한 미국 대학의 실패를 왜 모른 체하나

다시 한국의 대학으로. 산학협동이 강조되고 기업 간부들과 전직 정부 관료들이 대학의 이사나 총장으로 취임하는 것도 대학의 기업화 수순으로 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은 유행처럼 기업형으로 ‘구조조정’돼가고 있다. 단기간의 이익을 좇는 폭 좁은 시야는 지난 100년간 미국 대학이 거듭한 좌절을 못 본 체한다.

책을 번역한 상명대 박거용 교수(영어교육학)는 번역 작업의 고단함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 책은 원래 서울대 법인화법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2008년에 번역 작업을 시작했는데, 결국 서울대 법인화법이 통과되고서야 출판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지만, 사실은 한 문장, 한 단락씩 한국어로 전환될 때마다 그 문장들이 한국의 역사로 치환되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더뎌진 번역 작업만큼 서울대 법인화도 미뤄지다 종국에는 무효화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도 출간될 이유를 잃어버리고 번역이 미완된 채로 묻혀버리길 바랐을지 모른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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