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자신을 사랑한다면 남도 해하지 말라”

종교와 철학 탄생기를 돌아보며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의 해법을 모색하는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등록 2010-12-22 10:40 수정 2020-05-03 04:26

공포의 시대다. 공포의 종류마저 다양한 시대다. 끊임없기로는 환경오염에서 오는 섬뜩함이 있을 것이고, 전쟁과 테러의 공포는 불행하게도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다. 드문드문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도 닥친다. 전 지구를 감싸안은 불안과 공포의 분위기를 감지한 영국의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2천 년이 넘는 옛날로 돌아가 비극적 시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옛날에는 지금 우리에게서 사라진 마음, 잊혀진 정신으로 폭력의 시간을 이겨내는 현자들이 있었다. 암스트롱은 그때를 ‘축의 시대’라고 말한다.

기원전 900~200년, 폭력과 고난의 시대

‘축의 시대’를 살았던 현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여전히 이해와 관용이 불통함을 꾸짖을 지도 모르겠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는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었다.한겨레 자료

‘축의 시대’를 살았던 현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여전히 이해와 관용이 불통함을 꾸짖을 지도 모르겠다.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테러는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었다.한겨레 자료

사실 축의 시대는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먼저 제시한 개념이다. 1949년 에서 야스퍼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 정신의 기원으로 인정할 수 있는 시대”로 축의 시대를 정의했다. 암스트롱은 야스퍼스에게서 이 개념을 빌려와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를 축의 시대로 설정한다. 이 시기에는 인류에 영향을 미친 위대한 철학과 종교의 전통이 태어났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탄생했다.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하면 축의 시대 700여 년은 아주 짧은 한순간이다. 좀 부풀려서 말하자면 인류 철학과 종교의 바탕이 된 여러 사상들은 놀랍게도 거의 동시에 발현한 것이다.

철학적 사유가 비슷한 시기에 폭발적으로 형성된 계기를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지금의 인터넷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망으로 연결된 세상이 아니었던 만큼 당시에 일관되게 세계를 지배한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암스트롱은 다른 시대에 비해 그 무렵 인류가 고난과 고통을 자주 맞았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축의 시대에 창조된 종교적 전통은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고통의 공통된 경험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이에 암스트롱은 인류를 지배하는 종교를 탄생시킨 네 민족의 역사를 추적해보기로 한다. 인도, 이스라엘, 중국, 그리스가 배경이다. 그는 각개의 역사를 따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장마다 100여 년씩, 같은 시간대별로 네 나라의 변화를 엮어 나란히 배치했다. 꼼꼼한 공시적 분류는 다른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변화들을 쉬이 좇을 수 있게 했다.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예컨대 기원전 600년에서 530년까지를 묶은 5장을 보자. ’고난의 시대‘라고 제목을 붙였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의 이스라엘 공격은 파괴적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한 시기로 꼽기도 한다. 공허와 슬픔, 상실과 모욕으로 채워진 도시에서 사람들은 쓰레기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어머니는 아기를 죽여 삶아 먹었다. 청년들은 시커먼 형체로 앙상하게 말라 유령처럼 시내를 떠돌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으므로 오로지 그들이 가진 하나, 내면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내적이고 직접적인 앎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중국 또한 다른 종류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기원전 597년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영토를 정복하고 확장하는 데 몰두했다. 적을 완전히 없애는 한이 있어도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싶었다. 각 나라의 수장들은 위엄 있는 출정을 벗어 던지고 멸망을 향해 치달았다. 사회구조는 해체돼갔다. 설상가상으로 기원전 534년에는 강력한 태풍이, 뒤이어서는 치명적인 산불이 대륙을 덮쳤다. 이때, 거의 무정부 상태에 직면한 노나라 조정에서 말단 관리직을 얻으려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제의에 깊은 관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희생이 큰 시대에 하늘을 향한 희생적 제의를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사람들 개개가 선의 상태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가 바로 공자다.

축의 시대에 머물렀던 현자들은 각기 다른 공간, 조금씩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그들의 깨달음은 공통돼 있었다. 이들의 철학은 6장 ‘공감의 발견’에서 겹쳐 흐른다.

공자는 남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을 안내자로 삼으라고 권하며 ‘인’(仁)의 실천을 말했다. 공자가 말하는 인은 후에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선’(goodness)이라고 부르게 될 것과 닮았다. 인도 자이나교에서 완전히 깨달은 자를 뜻하는 ‘티르탕카라’로 불린 마하비라는 만물과 만인의 우정을 강조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곧 깨달음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폭력과 무례를 버려라. 서로 죽이는 것만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적대적인 말을 하거나 성마르게 행동하는 것도 잘못이다.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도 해쳐서는 안 된다…. 현자들은 가없는 자비와 친절,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세상을 구하는 길이라고 공감하고 있었다.

적의 얼굴에 비친 ‘나’의 얼굴

자비와 친절이라니, 혹자는 도덕 교과서 속에나 묻혀 있을 법한 단어라며 콧방귀를 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정신들이 화석처럼 치부되고 있음은 슬프게도, 우리가 배려와 이해가 사라져버린 시대에 머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암스트롱은 다시, 인간적인 에너지를 활용하자고 말한다. 고난과 고통은 각기 다른 형태로 모두의 몸에 흐르고 있다.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성을 지키고, 분노와 독기 서린 원한 대신 슬픔을 함께 나누자. 그러다 보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 적의 얼굴에 내 모습이 거울처럼 비치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인류에 대한 이해와 공존으로 이어질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가장 지키기 힘든,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세상에 대한 답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