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머니 속을 뒤지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나온다. 여행에서 돌아와 아직 빼놓지 못한 딴 나라의 작은 화폐부터 때론 사탕 봉지까지 질서를 잃은 물건들이 한꺼번에 나온다. 친숙하고도 낯선 사물들이 이렇게 졸졸 따라다닌다. 그러다가 한강이 창문 속으로 그대로 들어오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옥수역에서 웃음이 난다. 하얀 오리배들이 어쩜 저렇게 착하게도 줄줄이 선 채 한강을 채우고 있을까. 수직으로 뻗은 마천루의 풍경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아적인 얼굴로 아장아장 제 속도를 내며 움직이는 ‘귀요미’ 디자인이다.
한겨레 자료
지하철 창밖에서 바라보는 오리배는 작고 예쁘다. 모터가 달린 노란색 오리배는 빨간 왕관도 썼다. ‘한스’나 ‘밤비’처럼 자기 이름이 있거나, 게으르든지 외롭든지 제 성격을 갖고 움직이는 동화 속 오리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귀여운 오리배들을 손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근거리에서 오리배를 바라보면 어떤 오리배 얼굴에는 운영 업체의 명칭인 ‘아리랑’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글자가 크다. 어디로 어떻게 헤엄칠지 저마다 비밀이 있어 보이지만 선택은 많지 않다. “해가 떴을 때만 탈 수 있어요. 가격은 1만3천원이에요. 멀리 갈 수 있느냐고요? 그냥 가까이에서 타세요.” 뚝섬 근처 오리배 직원의 말처럼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만 운영된다.
누가 이런 오리배 형상을 상상했을까? 목은 백조처럼 길고, 노란 입매는 다소곳하다. 엉덩이는 다시 오리처럼 둥근 곡선을 따라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물과 닿은 파란색 테두리는 배 디자인의 묘미다. 그야말로 한국 시장에 넘쳐나는 플라스틱 바구니의 파란색이다. 이 플라스틱 배는 소박한 유람선이다. 세계일주를 꿈꾸는 크루즈도, 반짝이는 금빛 조명이 달린 관광유람선도 아니지만, 동물원에서도 백화점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프로이트가 언급한 감정인 ‘언캐니’(uncanny)를 빌려오면 어떨까. ‘두려운 낯섦’ ‘친숙한 낯섦’ 등으로 번역되는 언캐니의 독일어 원어(unheimlich)는 ‘집’(heimlich·집 같은)과 관련이 있다. 집처럼 친숙한, 그러다가 다시 또 내 집 같지 않게 낯설고 모호한 감정이다. 난 오리를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데, 내 몸보다 큰 오리 안에 있다. 최근 앤절리나 졸리는 새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새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딸을 위해 죽은 새를 박제했다고 한다. 박제 동물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지만, 플라스틱 오리배에는 현실감도 깊이감도 없다. 이런 배가 한강을 버젓이 항해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또 정겹게 다가온다.
오리배를 타면서 보는 한강은 새롭다. 한강의 물방울을 만지고 낭만적인 데이트도 한다. 어른을 아이처럼 만드는 오리배는 어른용 사탕 같다. 오리배는 수질을 감시하는 ‘로봇 물고기’가 등장하는 시대에도 계속 순항할 수 있을까? 오리배에 태평양처럼 큰 바다를 건너려는 야망은 없겠지만, 박민규의 소설 에서 ‘오리배 시민연합’의 사람들은 오리배를 타고 망망대해도 건넌다.
PS. 한강의 오리배만 있느냐. 그건 아니다. 사계절 안개 낀 도시 춘천, 그곳 공지천에 가면 더 가련하고 더 작은 풍채의 허술한 오리배가 헤엄친다. 뿌연 안개 사이에서 동그란 호수에 물방울 무늬를 새기며 바지런히 움직이는 것이다. 당신의 동네에도 오리배가?
현시원 독립큐레이터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김건희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못된 놈들” 육성 공개
[속보] 검찰, ‘오세훈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 후원자 압수수색
헌재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국회 쪽 “윤석열 반역행위자” 파면 촉구
‘이재명 계엄할 것’ 한동훈에…이재명 “개 눈엔 뭐만 보여”
‘비상계몽됐다’는 김계리의 선동…“김계몽으로 개명하라”
“깊은 마음 속 진정성”…권영세, 윤석열 ‘불쑥’ 개헌 제안 맞장구
대통령실 “윤 대통령 개헌 의지 실현되길”…복귀 ‘희망회로’
윤석열 최후진술, 사과도 승복도 안한 이유 뭔가? [2월26일 뉴스뷰리핑]
[전문] 윤석열 탄핵심판 최종진술, 반성 없이 ‘복귀 의지’만
나는 아이 아니고 자제분! 자랑이다… [그림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