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글을 연재하면서 얻은 평은 다양했다. “남자가 어쩌면 그렇게 요리를 잘하느냐”는 말도 들었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취재원은 “고 기자 때문에 아내에게 ‘당신은 뭐냐’는 핀잔을 듣는다”고 말했다. 내 귀는 라자냐(넓적한 파스타)만큼 얄팍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진짜 ‘개스트로섹슈얼’(Gastrosexsual·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는 신조어)이라도 된 것 같다.
이번주엔 ‘리조토’에 도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만들 때 멋져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포장과 겉멋에, 나는 껌뻑 죽는다. 리조토를 만들면 좀더 ‘개스트로섹슈얼’해 보이지 않을까. 어감도 좋다. 왠지 두 손을 오므리고 하늘에 대고 흔들면서 무한 긍정적인 톤으로 ‘ㄹㄹㄹㄹㄹ리∼좃토’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2009년 주세페 바로네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홍익대 ‘라 꼼마’에서 요리하는 박찬일 주방장의 스승이다. 시칠리아에서 박 주방장에게 파스타를 던지며 요리를 가르쳤다. 그가 리조토를 만드는 모습은 진짜 섹시했다. 이제 겨우 쉰을 넘긴 주제에 머리가 훌러덩 벗겨지고 배가 나왔다. 그런데도 섹시했다.
그가 좁은 주방에 서서 국자로 쌀을 젓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라파엘로가 대작을 그리기 전에 물감을 개는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디지털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도 그는 리조토에 집중했다.
셔츠를 걷어올린 남자가 자동차를 몰고 후진할 때 여자들이 느끼는 ‘섹시함’이 저런 건가 싶었다. 나는 그것을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과 의지로 어떤 공간이나 사물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남자에게 여자는 섹시하다고 느낀다’고 해석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파시스트나 사디스트로 비난받을 수도 있겠다;;)
박찬일 주방장의 를 펼쳤다. 천천히 조리법 페이지를 펼쳤다. 나도 ‘온전히 자신만의 능력과 의지로 어떤 공간이나 사물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남자’가 되리라! 섹시한 남자! 쌀 180g, 파르미자노 가루 치즈 4큰술, 우유 반컵, 닭 육수 1컵, 중간 크기 양파 4분의 1개, 버터 3큰술. 나는 쌀, 가루 치즈, 닭 육수를 지배할 것이다, 섹시하게. (계속)
고나무 기자 한겨레 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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