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에 대한 서구인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은 2010년을 맞은 오늘에도 여전하다. 지나치게 노력하고, 수학을 잘하고,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연주에 능하다는 식의 긍정적 편견이 있는가 하면, 놀 줄 모르는 지루한 꺼벙이인데다, 공부만 아는 괴짜고, 엉큼하고 교활한데다, 지독하게 경쟁적이고, 초인적 인내심을 지녔으며, 자기네끼리만 어울리고, 권력에 순종적이라는 식의 부정적인 편견도 존재한다. 물론 긍정처럼 들리는 편견에도, 이면엔 부정이 따른다.
서구의 대중문화에서 동아시아 여성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가시성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동아시아 남성은 그렇지 못해서, 그 위상은 거의 ‘투명인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 매스미디어에 등장하면, 여자처럼 가녀린 몸매에, 남성우월주의자고, 음흉하고, 무술에 능하다는 식으로 그려진다. 하도 단편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서구인은 황인종 남자를 선천적으로 운전에 서투른 무성적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동아시아인도 적잖다.
구미의 매스미디어가 동아시아인을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관례를 바로잡는 싸움은 일차적으론 미디어 감시 단체의 시민운동가나 소수인종 출신 유명인·정치인의 몫이겠다. 그렇다면 이런 주제를 현대미술가는 어떻게 다룰까? 백남준은 “황색 재앙! 그게 나다”라고 일갈한 바 있지만, 서구인들과 척지고 살기보다는 광대처럼 웃고 지내는 쪽을 택했다. 반면 무라카미 다카시는 피에로처럼 우스꽝스러운 의상을 차려입고 아트페어 현장을 누비는 등 아예 인종적 편견에 편승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대만 출신의 행위예술가 셰더칭은 조금 달랐다.
1974년 미국에 밀입국한 고교 중퇴 학력의 무명 예술가 셰더칭은 현대예술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에 자리를 잡고, 불법이민자 잡역부로서의 생활을 감내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이 처한 사회·문화적 고립과 소외를 예술로 전환하겠노라 결심한 때는, 1978년 가을이었다.
만 28살의 황인종 남자는 소호 아랫동네인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거처에 손수 철창을 설치해 감방을 꾸몄다. 간이침대·세면대·양동이·전등을 구비한 뒤, 간단한 선언문을 타이핑했다. “1979년 9월29일 나 자신을 풀어줄 때까지, 나는 대화를 나누지도, 읽지도, 라디오를 듣거나 TV를 시청하지도 않겠다.”
1978년 9월30일 오후 6시에 시작돼 1979년 9월29일 오후 6시에 종료된 이 예술적 감옥 생활의 제목은 다. 365일 동안 감금이 유지됐음을 공증하는 일은 변호사 로버트 프로잰스키가 담당했고, 배달된 식사를 철장 안으로 밀어넣고 쓰레기를 내가는 일은 룸메이트이던 친구 궝쳉웨이가 맡았다.
백색 작업복에 스텐실로 수인 번호를 찍어넣은 작가는 손톱으로 벽면을 긁어 작대기를 그음으로써 하루하루를 기록했고, 매일같이 (친구의 손을 빌려) 자신의 정면 초상을 촬영했다. 기록사진은 삭발에서 장발로 변해가는 청년의 모습을 증언한다.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은 역사적 행위예술을 되돌아보는 전시 프로그램을 신설하면서,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다뤘다. 주류 사회와의 타협을 거부했던 동아시아 남자의 예술적 고립과 소외가 기념비적 존재감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추신. 2000년 1월1일 셰더칭은 예술창작에서 손을 떼고 은퇴했다.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임근준 미술 평론가가 20·21세기 미술 걸작을 통해 사회를 읽는 연재를 시작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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