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1957∼96)의 대표작 (Untitled-Death by Gun·1990)은 전시장 바닥에 쌓아놓은 흑백 포스터다.
높이 114.1cm에 너비 83.6cm의 종이에 인쇄된 내용은, 1989년 5월1∼7일 일주일간 에 보도된 미국 내 총기사망자 460명의 사진과 사건 개요다. 본디 책자로 만들 생각이었는지, 25쪽으로 구성된 내용이 날짜순으로 펼쳐져 있다. 각 페이지에 16~20명을 담았고, 사망자 사진이 없을 땐 남녀의 증명사진 실루엣 이미지를 실었다. 특이한 사건은 크게 실었는데, 내용이 괴이쩍다. 콜로라도 라스아니마스 카운티에서 사망한 대럴 홀먼(37)은, 그야말로 어이없게 죽었다.
“중장비 기사인 대럴 홀먼과 그의 15살 된 아들은 사냥용 소총을 들고 팀을 이뤄 곰사냥에 나섰다. 미끼로 유인한 흑곰을 아버지가 총으로 쐈지만, 부상을 입은 곰은 덤불숲으로 도망쳤다. 부자는 산등성이를 따라 곰을 추격했는데, 그만 지근거리에서 이 짐승과 마주쳤다. 성이 난 136kg짜리 곰은 아버지를 노렸다. 남자는 두 차례 방아쇠를 당겼으나, 괴수는 멈추지 않고 다가와 그를 잡았고, 바위 앞에 몰아세운 뒤 앞발로 내리쳤다. 절박해진 아들은 곰에게 총을 난사했다. 그러나 총에 맞은 것은 그의 아비였고, 그만 즉사했다. 곰은 나중에 사체로 발견됐다.”
대개의 미술품이 촉수엄금인 것과 달리, 곤살레스토레스는 의 낱장 포스터를 누구나 집어들고 가져갈 수 있게 허락했다. 따라서 포스터를 가져가는 관객은, 이 포스터를 고이 간직하거나 벽에 게시함으로써 작업을 개념적으로 완성해내는 능동적 참여자가 된다.
또한 작가는 바닥에 쌓아놓은 인쇄물 더미를 조각으로 간주해 9인치(22.86cm)가 ‘이상적 높이’(Ideal Height)라고 명시했다. 덕분에 작품을 소장한 기관은 계속 포스터를 인쇄하고, 담당 큐레이터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과제를 떠맡는다.
1990년대 특유의 ‘퀴어·에이즈·이민자’ 정치학을 대표하는 인물인 곤살레스토레스는, 개념미술의 어법과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차용해 지극히 개인적인 일화들(대개 동성 연인 로스 레이콕에 관한 것)을 숨기고, 그것이 전시되고 해석되는 과정이 정치적 비평 혹은 성찰이 되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주 활용한 소재는 이렇다. 전선으로 이어진 전구들, 스냅사진을 인쇄한 퍼즐, 한 쌍의 벽시계·거울·커튼, 바닥에 쏟아놓은 알사탕, 끝없이 제공되는 인쇄물 더미, 반짝이 구슬 장식 스크린, 옥외 광고판 등등. 단순한 형태의 작품들은 작가를 닮아 몹시 멜랑콜리했고, 비극적 죽음의 색채를 띠었다.
곤살레스토레스는 1957년 쿠바에서 태어났지만, 1971년 (여동생과 함께) 부모 곁을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해 삼촌 슬하에서 성장했다. 1979년 23살의 나이로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1980년 첫 미술품을 제작한 뒤, 1983년 미술학교 프랫을 졸업했고, 연인 레이콕을 처음 만났다. 1986년 동거를 시작해 “생애 처음으로 진짜 가정을 꾸렸다”고 기뻐했으나, 모친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1987년 뉴욕대 대학원과 국제사진센터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현대미술가 집단인 ‘그룹 머티리얼’(Group Material)의 일원이 됐고,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90년 동반자인 레이콕의 병세(에이즈)가 심해지자 LA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를 제작했으며, (작가의 약진에 큰 발판 노릇을 한) 안드레아로슨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91년 레이콕을 잃었고, 3주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1991년 피트니 비엔날레에 개인 작업과 ‘그룹 머티리얼’의 공동 작업을 출품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1995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1996년 마이애미에서 에이즈로 사망했다. 그해 에이즈칵테일 요법이 보급되며 비로소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는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됐다.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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