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가 구동희(1974~)의 (Natural Monument - Geological features and minerals of South Korea·2010)은, 엉뚱한 형식으로 조사·연구를 진행해 모종의 음험한 기운을 집약시킨 괴작(怪作)이다. (패션지의 제안에 따라) 화장품 회사 ‘키엘’(Kiehl’s)이 후원하는 친환경 미술전에 참가한 작가는, 후원사의 제품 특성에 바탕을 둔 작업을 계획했다.
완성된 작품의 모습은, 전기 조명 장치를 내장한 입간판이다. 간판의 앞면에는 범상치 않은 동굴의 사진을 인쇄했고, 뒷면에는 화장품처럼 제조 성분을 적었다. 키엘의 성분 표기 형식을 그대로 차용했기 때문에, 화장품 브랜드에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레퍼런스를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성분’(Ingredients) 항목에 표기된 재료는, 한국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질·광물 총 44건에서 추려낸 29건이다. 운평리 구상화강암, 제주 김녕굴·만장굴, 울진 성류굴, 익산 천호동굴, 삼척 대이리 동굴지대, 제주 서귀포층 패류화석, 의령 신라통중의 우흔(雨痕·빗방울 자국), 영월 고씨굴 등등. 성분 표기 아래의 ‘콘셉트’(Concept) 항목과 ‘기원’(Origin) 항목엔, 각각 천연기념물의 정의와 천연기념물이란 용어의 역사적 기원을 옮겨 적었다.
입간판 앞면의 사진은, 천연기념물 안내 웹페이지에서 남한의 지질·광물 섹션에 게재된 사진 이미지를 다운로드받아 일일이 짜깁기해서 가상의 동굴을 꾸며낸 결과다. 부분을 차용할 때, 작가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종유석을 선별하는 등 ‘원료’의 선택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인지, 야릇한 풍광의 합성 이미지를 바라보자면, 음험한 광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작가의 도움말에 따르면, 후원사 직원으로부터 브랜드의 역사와 특성- 미국 뉴욕의 약국 가문에서 시작됐고, 135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직접 광고와 2차 포장 용기를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성분 설명 문구가 자세하고 눈에 잘 띄며, 때로는 손글씨를 선호하고, 매장에는 해부학용 해골과 생화 그리고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비치되며, 점원은 약사처럼 가운을 입고, 제프 쿤스와도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 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다양하고 이질적인 개념들을 브랜드 정체성에 맞춰 하나의 제품에 축적시키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단다.
그러니까, 이란 입간판은, 작가가 후원사 직원으로부터 전수받은(?) ‘브랜딩 노하우’(Branding Know-how)를 특정한 자연 대상에 적용함으로써 도출해낸 ‘예상 밖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뜬금없는 ‘자연의 기념비’는, 키엘의 브랜딩 스타일을 풍자하고 기념하는 동시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지질·광물의 특성을 그 양식에 맞춰 집적함으로써 ‘브랜드화된 가상의 천연기념물’을 도출하고, 다시 그것을 홍보하는 꼴이다. (천연기념물을 아끼고 보호하자는 뜻보다는, ‘친환경 미술’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우리 시대의 유행을 ‘친환경 미술’의 형식으로 넌지시 비웃는 자학적 농담의 뜻이 더 강하겠지만.)
그렇다면, 브랜드 마케팅의 형식으로 브랜드 마케팅을 풍자하는 이런 새로운 비평적 창작 방식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일단, ‘브랜드 홍보 비평’(Brand-promotional Critique)이라고 호명해보자.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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