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뒤 등장한 청년 세대는, 1960년대 중·후반 전전의 사회·문화적 구체제를 곳곳에서 무너뜨리며 자유분방한 전후의 신질서를 실현했다. 현대미술계에서도 양상은 마찬가지여서, 이른바 ‘전후 미술(Post-War Art)의 거장’이라 불리는 많은 작가들이 1960년대에 등장했다. 2011년, 그들은 이승의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다. 지난 7월20일엔 유명한 독일계 영국의 초상화가 루치안 프로이트(1922∼2011)가 88살을 일기로 세상을 떴다.
수많은 전후 미술의 대가들 가운데 유독 옛 시대의 유령 같았던 인물이 프로이트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시대착오적 화풍을 구시대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이유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라는 사실이 그에게 독특한 아우라를 선사한 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화가 자신이 스스로를 예외적 존재로 포장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기 때문이다.
화가 프로이트의 초기작은 별 볼 일 없는 영국의 구상화풍을 따랐으나, 1950년대에 접어들며 점차 거친 붓놀림으로 독특한 즉물성(Sachlichkeit)을 구현했다(1954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영국관에 선배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 함께 초대받은 일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그가 오늘날과 같은 독특한 화풍의 기초를 다진 것은 연대를 앞당겨봐야 1970년대의 일이고, 국제적 명성은 1987년 미국 워싱턴 허시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뒤에야 찾아왔다. 그는 말년에 더욱 운이 좋았다. 1990년대엔 이른바 ‘보디아트’의 유행과 구상회화의 복권, 그리고 세기말적 분위기 따위가 한데 어우러졌고, 이는 프로이트의 그림에 야릇한 ‘시대의 매력’을 불어넣었다.
프로이트의 전(前)현대적 초상화 제작 방식은 영국 사회의 계급구조와 맞물려 묘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베이컨의 작업실을 모방했는데, 벽면이고 바닥이고 물감을 처발라놓아 더럽기 짝이 없는 실내 공간에서 화가와 모델(종종 누드)이 서로를 대면한 풍경은, 어쩐지 도축장에서 백정과 돼지가 서로 마주한 느낌이었다. 화가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난 누드를 선호한다. 벗으면 계급이 어떻건 다 똑같으니까.” “내겐 물감이 바로 그 인물이다.” “내가 살고 이해하는 공간에서, 내 이목을 끄는 사람, 내가 관심을 기울이는 인물에게서 작업을 이끌어낸다.”
루치안 프로이트의 아버지인 에른스트 L. 프로이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막내아들- 는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명목상 직업은 건축가였고, 어머니인 루치에 브라슈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부유한 목재 산업가의 상속녀였다. 건축가와 부잣집 딸은 아들 셋을 낳았는데, 루치안 프로이트는 둘째였다. 독일 베를린 티어가르텐 인근의 부촌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던 이 가족은, 1933년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1938년 영국의 명문학교 브라이언스턴에서 퇴교당한 뒤, 경마 기수가 되겠다는 망상을 품은 루치안 프로이트는 여러 미술학교를 전전했다. 이스트앵글리언드로잉회화학교에 다닐 적엔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학교를 홀딱 불태워버렸다는데, 정확한 책무 관계는 밝혀진 바 없다.
1940년대엔 잠시 초현실주의 화풍을 따랐지만, 곧 작가는 철 지난 유행과 결별했다. 초현실주의는 할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영향에 따라 파생됐던 예술운동이므로, 루치안 프로이트에겐 극복해야 할 산이었을 터. 후일 화가는 보수적인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스에게 이렇게 말하며 초현실주의를 은근히 깎아내렸다. “난 눈앞에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도 화폭에 담을 수 없었다. 그건 한갓 교활함, 무의미한 거짓과 다름없었다.”
구상화가 프로이트의 일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그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인물화가 미술사적으로 큰 의의를 획득했다고 보긴 어렵다. 많은 이들이 프로이트의 대표작으로 화가 자신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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