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문인화가’를 자처했던 장다첸(張大千·1899∼1983)은 쓰촨성 네이장 태생으로, 본명은 정취엔(正權)이며, 개명한 이름은 위안(爰)이고, 호는 다펑탕(大風堂)이다.
1917~19년 일본 교토에서 염직 기술을 익혔고, 1919년엔 상하이로 거처를 옮겨 쩡시(曾熙·1861∼1930)와 리돤칭(李端淸·1867∼1920)한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두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장다첸은 당·송·원·명·청 중국 역대의 전통을 공부했고, 특히 석도(石濤) 등 대가들의 작품을 임모(臨摸)하며 실력을 쌓았다.
1926년부터 장다첸은 황산·루산 등 중국의 명산대천을 유람하며 사생에 바탕을 둔 작업을 전개했고, ‘황산화파의 시조’라는 큰 이름을 얻었다. 1941년엔 약 2년6개월 동안 둔황 천불동에서 작업했다. 그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309개 동굴에 번호를 붙여가며, 북위와 서하 시대에 이르는 고대의 벽화를 일일이 모사했다.
1950년 인도의 다르질링에 거주하며 아잔타 석굴의 벽화를 임모하며 연구했고, 1952년 아르헨티나를 시발점으로 삼아 왕성한 해외 활동을 펼쳤다. 1954년 브라질로 이주해 중국풍 정원 ‘팔덕원’(八德園)을 꾸몄고, 1961년 순회 회고전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공고히 했다.
고금의 상이한 화풍과 기법을 습득해 종합한 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새로운 현대적 화풍을 일군 장다첸의 면모는 리커란(李可染·1907∼89)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장다첸에겐 동시대 경쟁 화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정교하게 제작한 위작(僞作)이다.
장다첸은 역대 명화를 대거 수집하는 가운데, 옛 화가들의 도장과 오래된 종이와 비단을 사들여 모작(模作)했다. 임모를 최선의 공부로 쳤던 그이지만, 단지 기술 연마를 위해 모작을 대량 제작한 것은 아니었다. 석도의 회고전을 둘러본 그가 조수에게 “3분의 1은 내가 젊어서 그린 것이로군”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다. 대개의 미술가들이 현재와 미래를 위해 투쟁했다면, 그는 모작을 통해 과거와 싸웠고, 많은 작품을 진품으로 둔갑시킴으로써 실제 역사를 뒤바꿔놓았다.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이르기까지 세계 주요 미술관이 장다첸의 위작을 소장하고 있다.
장다첸이 1951년께 제작한 거연(巨然)의 (茂林???)는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품이다. 1961년 구매 당시 박물관의 큐레이터들과 소장품위원회의 미술사학자들은 감쪽같이 속았다. 하지만 후일 장다첸의 위작으로 드러난 다른 그림들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진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장다첸의 위작에 속은 사람 가운데 한명인 중국미술사학자 마이클 설리번(1916~)은, 뒷날(1986년) 이렇게 변명했다. “그림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직 거연 전통의 주요 작품을 보지 못한 상태였고, 푸선(傅申·1937~) 박사의 거연 연구서도 아직 출간되지 않은 터였다. 뒤늦은 깨달음을 통해, 이 꽤 놀라운 작품은 10세기 양식과는 무관할뿐더러 기술 면에서나 과단성 면에서나 장다첸의 탁월한 모작으로 여겨진다.”
물론 설리번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속았다. 수집가 옌성보(燕笙波·1910~?)는 이 그림을 자랑스러워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장다첸에게 감식을 청했다. 보통의 경우 장다첸은 자신이 그린 모작에 제찬(題贊)을 적고 낙관(落款)하는 일을 삼갔다지만, 이번엔 파문을 피하려고 한 탓인지 감상을 적고 도장을 찍었다. 단, 그림이 아니라 배접된 비단 테두리에 적어 교묘히 책임을 덜었다. 하지만 그는 감식과 수장을 논하며 자신이 그린 또 다른 거연 위작 두 점을 진본이라 주장하는 대담함을 드러냈다. 아무튼 는 장다첸이 제작한 거연의 모작(모작임을 순순히 밝혀놓은)과 위작 가운데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힌다.
장다첸의 모작에 관한 일화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그는 위작으로 미술시장을 어지럽힌 사기꾼에 불과한가, 아니면 역사를 다시 쓴 위대한 예술가인가?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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