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Guernica)는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그림’이다. 복잡다단한 정치적 복선을 거느린 이 대형 회화는, 어떻게 ‘20세기 최강의 정치선전 예술품’이 됐을까?
1937년 1월 스페인 제2공화국 정부가, 5개월 뒤 개막하는 파리세계박람회의 국가관 전시에 유명화가 피카소를 초빙했다.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고전했던 피카소는 스페인관의 벽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에 크게 고무됐다.
당시 스페인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과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을 암시하는 전초전 성격을 띠었고, 스페인은 유럽의 우파와 좌파가 격돌하는 이념 전쟁의 승부처와 다름없었다.
공산주의자를 자임했던 피카소는, 1936년 7월18일 공화파 정부를 전복하려는 우파의 쿠데타가 일어나자마자 프랑코 일파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공화파 정부는 피카소를 프라도미술관장으로 임명했다. 공화파 정부를 사수하려는 인민전선의 지지자로 나서며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은 화가는, 스페인어에 능통한 프랑스인 사진가를 새 연인으로 맞았다. ‘피카소의 다섯 번째 뮤즈’로 꼽히는 도라 마르(1907~97)가 그 주인공이었다.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도라 마르는 그랑오귀스탱 거리에 피카소의 새 작업실을 마련하고, 조르주 바타유가 이끄는 반파시스트 예술인연합인 ‘콩트로 아타크’(역공)에 공간을 제공했다. 그러던 와중에, 독일 공군이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소도시인 게르니카를 3시간에 걸친 공중 폭격으로 초토화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4월26일의 일이었다. 이어 주요 언론이 게르니카의 참상을 보도했고, 신문 기사를 읽은 피카소는 이 사건을 파리세계박람회 스페인관의 주제로 삼았다.
5월1일 스케치를 시작한 피카소는 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을 한데 녹여 야심작 의 초안을 제작했다. 5월11일 캔버스에 초안을 옮기기 시작했고, 3주에 걸친 밀도 높은 창작 과정은 도라 마르에 의해 사진 촬영돼 7단계의 기록으로 정리됐다.
6월5일 개막한 파리세계박람회 국가관 전시에서 는 단연 화제였다. 박람회 폐막 뒤 는 유럽 각지를 순회했고, 프랑코 반군의 쿠데타를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힘을 모으는 구심점 노릇을 맡았다. 1939년 4월1일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마무리되자, 는 미국으로 이송돼 스페인 난민을 위한 기금 마련 행사에 동원됐으며, 작가의 요청에 따라 뉴욕 현대미술관에 기탁됐다.
1939년 9월1일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고, 약 6주 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의 대규모 회고전이 개막했다. 이 전시에서 는 다시 한번 나치에 맞서는 반전의 상징으로 힘을 발휘했다.
스페인을 통치하던 프랑코는, 1968년께 가 스페인에 돌아오도록 힘을 썼다. 하지만 피카소는 이를 거부했고, “공중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작품 귀국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화가는 1973년 서거했고, 프랑코는 1975년 그 뒤를 따랐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은 민주적 입헌군주제를 도입했지만, 욕심 많은 뉴욕 현대미술관은 작품의 반환을 주저했다. 그러나 결국 는 1981년 스페인 시민사회의 품에 안겼고, 지금은 마드리드 레이나소피아미술관에 영구 전시돼 있다.
추신: 1955년 넬슨 록펠러의 요청에 따라 의 태피스트리 버전이 제작됐고, 1985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의실 입구에 설치됐다. 회색조의 원작과 달리 갈색을 띠는 이 작품은, 2003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이라크 공습을 개시하며 기자회견을 열 때, 무차별 공중 폭격을 비판하는 이 그림을 유엔 로고를 박은 커튼으로 가려버렸던 것. 태피스트리 버전의 는 2009년 유엔 본부 건물의 개·보수 작업을 핑계로 영국 런던으로 이송됐다. 유엔 당국이 골칫거리를 멀리 섬나라로 유배 보낸 꼴이다.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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