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사람들은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 머펫(Muppet·팔과 손가락으로 조종하는 인형)이 등장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짐 헨슨(1936~90)이 (Sesame Street)에서 독특한 개성을 지닌 머펫 캐릭터들을 선뵈기 전엔 그렇지 않았다.
퇴락한 인형극의 전통에서 ‘영상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캐릭터 머펫’들을 창조해낸 이 천재 예술가의 역사적 위치와 대중력 영향력은, 마땅히 비견할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다.
고등학생 시절 이미 빼어난 인형사였던 그는, 일찌감치 머펫의 교육·연예적 가능성을 간파했다(머펫은 마리오네트(실로 조종하는 인형)보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 TV 영상에서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 1950년대엔 (Sam and Friends·1955~61)이란 소규모 머펫 인형극을 제작했고, 이어 ‘머펫 Inc.’를 설립해 상업광고에 자신이 디자인한 인형들을 진출시켰으며, 여러 토크쇼에 출연해 미국민에게 머펫의 매력을 널리 알리려 애썼다.
이 히피 지도자 같은 인형사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된 것은 역시 제작이었다. 그가 몇몇 동료들과 조직한 ‘어린이 텔레비전 워크숍’(Children’s Television Workshop·오늘날 세서미 워크숍)에서 탄생한 는 1969년 11월10일 첫 방송을 탔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정전(正傳)으로 자리잡았다.
헨슨이 창조해낸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미스 피기, 어니와 버트, 곤조, 쿠키몬스터 등- 은 지금까지 전세계 어린이들과 아직 동심을 지닌 어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머펫은 그가 직접 연기한 개구리 커미트다. 사실상 그의 분신이던 커미트는, 대외적으로 머펫 제국의 대변인 노릇을 맡아 대스타 못잖은 인기를 구가했다.
개구리 커미트는 머펫의 관객층을 어른으로 넓히는 데 앞장선 주역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헨슨은 ‘인형극은 어린이용’이라는 편견을 넘으려고 주요 머펫을 여러 성인 오락물에 출연시켰고, 1976년엔 그렇게 쌓은 평판을 바탕으로 성인용 TV 인형극인 를 출범시켰다.
개구리 커미트 총감독이 이끄는 보드빌(Vaudeville·배우, 마술사, 동물 등이 나오는 쇼) 스타일의 버라이어티 인형극인 는 5년간 지속되며 120개 에피소드를 제작·방영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매번 특별출연 손님- 재즈 뮤지션에서 공상과학(SF) 영화 주역 배우에 이르는- 을 모셨다는 것이다. 처음엔 유명 인사들이 출연을 꺼렸지만, 당대 최고의 발레리노이던 루돌프 누레예프가 전격 출연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뒤로는 섭외에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헨슨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했다. 1982년엔 다소 섬뜩한 분위기의 판타지 인형극 을 발표했고, 1983년엔 어린이용 인형극인 을 시작했으며, 1988년엔 동화와 신화를 진지하게 다룬 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방대해진 머펫 제국의 관리에 어려움을 느낀 그는, 1989년 자신의 회사를 월트디즈니에 매각했고, 개구리 커미트는 짐 헨슨 컴퍼니의 마스코트 지위를 상실했다. 이듬해인 1990년, 헨슨은 예기치 않은 박테리아성 폐렴으로 급서했다. 에이즈 합병증이었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
추신1. 짐 헨슨은 모친이 쓰레기통에 버린 낡은 코트로 개구리 커미트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추신2. 커미트의 조카인 개구리 로빈(1971∼)이 1977년 싱글로 발매한 동요 (Halfway Down the Stairs)가 영국 팝 차트 7위에 올랐다. 헨슨의 장례식에서 동료 인형사 제리 넬슨은 이 서글픈 노래를 추모곡으로 불렀다.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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