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6일 프랑스 태생의 폴란드인 미술가 로만 오팔카(Roman Opałka·1931~2011)가 80번째 생일(8월27일)을 3주 앞두고 세상을 떴다. 그가 바르샤바의 작업실에서 1에서 무한대에 이르는 숫자를 적는 프로젝트를 개시한 해가 1965년이었으니, 일생일대의 숫자 놀음은 올해로 47년째를 맞은 터였다. 로만 오팔카의
1968년 화가는 캔버스의 배경색을 검정에서 회색으로 바꿨다. 이유는 “감정적이지도 않고, 상징적이지도 않은 색상이기 때문”이었다. 1972년 숫자 1000000을 적었고, 그 이후 회색을 조금씩 밝게 만드는 법칙을 정했다. 하나의 캔버스(크기는 늘 196×135cm)가 완성될 때마다, 바탕이 되는 회색에 1% 분량의 흰색을 첨가해나가기로 결심한 것. 따라서 말년의 그림은 거의 백색 모노크롬에 가까웠다. 애초부터 그는 흰색 바탕에 흰색의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헛짓’의 단계에 달하기를 희망했더랬다.
회색 혹은 회백색의 배경에 백색의 대단위 숫자를 적어 내려가는 일은 대단한 집중력을 요했다. 따라서 1968년 작가는 작업을 돕는 보완 장치로 테이프 녹음기를 도입했다. 캔버스에 숫자를 채워넣으면서 그 숫자를 낭송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기로 기록한 것. 쓰기(그리기)와 함께 수행되는 낭독은 잘못된 숫자를 잡아내는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그림의 속도를 일관되게 만듦으로써 화면에 감정이 배제된 일정한 톤을 부여했다. 각각의 그림이 만들어진 순간을 담은 녹음 기록은 그림을 전시할 때 함께 재생되는데, 관객은 이를 통해 그림이 제작된 속도와 화가의 호흡 조절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1969년부터 화가는 자신의 모습을 작업의 일부로 삼았다. 하나의 캔버스가 완성될 때마다 그림을 배경으로 선 자신의 모습을 사진 촬영하기 시작한 것. 늘 같은 백색 셔츠를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기록했다. 1972년엔 일관된 촬영 결과를 얻으려고 엄격한 촬영 조건을 마련했다. 카메라의 높이는 154cm, 카메라와 배경이 되는 캔버스의 거리는 95.5cm로 정했고, 이발도 제 손으로 직접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철두철미한 작가의 작업에서 도드라진 것은 오류였다. 녹음을 자세히 들어보면, 작가가 더듬거리며 헤매는 경우가 있다. 반복적인 쓰기와 낭독에 의해 자기 최면에 빠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단순히 피곤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오류 수정에 관한 원칙은 무척 단순했다. ‘숫자를 잊고 잘못 쓴 경우, 잘못을 인지한 순간 다시 숫자를 고쳐 적는다. 하지만 너무 오래 지난 실수일 경우에는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말년의 화가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 삶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죽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밋밋하고 의미 없을지도. …내가 죽어서 더는 숫자를 쓸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될 테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첫 붓질을 했을 때, 이미 작품은 완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에서 ‘끝’을 내다봤으니까.” 작가가 젊은 날 세운 목표치는 7777777이었다.
추신. 폴란드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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