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예술가 티노 세갈은 2000년부터 ‘행위’를 미술작품으로 발표했다. 그는 서서히 유명세를 타더니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2010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35살의 나이로 때 이른 회고전을 열었다.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 세갈의 회고전은 현대미술전의 관행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엔 작품 사진은커녕 흔한 작가의 초상 사진 한 장 없었으며, 개막식도 없었고, 전시 도록도 발간되지 않았다.
미술관 본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이 볼 수 있는 오브제 형태의 작품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디자인한 미술관 건물뿐이었다(건축 전공자들의 답사가 이어졌다).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사람들 눈길을 잡아끄는 역할은, 로툰다(원형 홀) 1층 중앙에서 키스를 나누는 젊은 남녀가 맡았다. 천천히 움직이며 이런저런 연인의 자세를 취하는 남녀는, 바닥에 눕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누군가 자세히 보려 가까이 다가서면, 남녀는 동작을 멈추고 여자가 입을 열어 “티노 세갈”이라고 작가 이름을 말한다. 곧이어 남자가 “키스”(Kiss)라고 제목을 읊고, 다시 여자가 “2004”(two thousand and four)라고 제작연도를 밝힌 뒤, 남녀는 동작을 재개한다. 또 다른 누가 다가서면 남녀의 말하는 순서가 바뀐다. 자세히 보면, 한 순배의 루틴이 끝날 때마다 커플은 “티노 세갈” “키스” “2004”라고 말하고 다시 공연을 재개한다.
더 끈기 있게 지켜보면, 이 공연자들은 1시간마다 교체되는데, 새로 투입된 남녀는 앞서 공연을 진행하던 커플 옆에서 행위를 모사하듯 천천히 키스를 나누기 시작한다. 남녀 두 쌍은 1분여 동안 서로 공조하며 같은 동작을 공연하다가, 전임자 두 명이 퇴장하면서 다시 한 쌍의 공연으로 전환된다. 이런 교대 공연은 미술관 개장 시간 내내 끊임없이 계속됐다.
세갈의 문제작 의 내용은, 19세기 말 이래 현대미술사에서 남녀의 키스를 담은 주요 작품에서 포즈만을 추린 결과다. 작가가 참조한 작품이 정확히 몇 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제프 쿤스의 연작(1990∼1991) 가운데 하나,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1908), 귀스타브 쿠르베의 회화 한 점(1860년대), 오귀스트 로댕의 (1866)가 인용됐다.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를 공연한 이들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18∼19살의 청춘남녀로, 대개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약 6주간의 전시 기간 내내 매주 3일 하루 4회의 교체 공연에 투입된 이들이 받은 시간당 임금은 7달러25센트와 약간의 미술관 특전.
본디 현대무용가로 활동한 세갈은 자신의 작품을 ‘연출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라고 부르며, 일체의 기록(사진·녹음·동영상·문서 등)을 거부해왔다. 따라서 도록은 한 번도 제작된 바 없고, 인터넷·잡지·신문에 게재된 작품·공연 사진은 모두 작가의 권리를 침해한 불법(?) 촬영본들이다.
작업에 동원된 공연자는 ‘해석가’(Interpreter)라고 불리는데, 작업 지시는 모두 구두로만 진행한다. 그러나 호흡법이나 몸을 움직이는 법 등은 일일이 작가가 직접, 혹은 작가의 오랜 동료인 무용가 제롬 벨 등이 가르쳤다. 결국 세갈의 역할은 안무가고, 작품은 일종의 무용인 셈이다. 그의 작품은 철저히 현대미술의 관습에 맞춰 전시되고 거래됐다.
‘연출된 상황’은 4∼6개 에디션으로 한정된 채 구두로 전달되고 판매된다. 작가가 (작업에 관해) 어떤 종류의 물질적 변환도 거부하기 때문에, 모든 작품은 면 대 면으로 전달되고 기억으로만 저장된다. 가격은 8만5천∼14만5천달러. 거래가 성사될 때 구매자와 작가 외에 공증인이 자리에 함께하고, 결제 수단으로 현금을 이용한다. 개인이나 기관이 구매한 작품은, 어디까지나 기억 형태로 소장되고, 역시 다른 기관의 전시에 대여될 수 있다. 대여할 때도 작품은 입말로 전달된다.
추신.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2008년 ‘미술관 할인가’로 의 2003년 버전을 구매했는데, 가격은 7만달러였다.
미술·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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