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학자들은 동양을 가리켜 열등하고 보수적이며 믿을 수 없는 집단이라고 분석했다. 그들이 동양을 분석한 기저에는 동양인이란 ‘통제와 분석이 가능한 타자’라는 잔인하고 이기적인 시선도 포함돼 있다. 이에 에드워드 사이드는 에서 동양에 대한 서구 사회의 오래된 편견을 비판했다. 주류 사회에서 타자화되기 좋은 조건을 타고난 그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세계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나라들)가 지닌 제국주의적 태도에 날카로운 시선을 던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사이드는 1948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강점되면서 이집트로 이주한 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세 개의 키워드, 요리·사랑·문자
여기, 사이드의 시선으로 인간사를 조금 더 세밀하게 관찰한 이가 있다. 영국의 역사인류학자 잭 구디는 (산책자 펴냄)에서 동서양 문명의 발달사를 살핀다. 19세기 제국주의의 본령처럼 여겨졌던 영국에서 나고 자란 그가 어떻게 전 인류를 조망하는 시선을 가지게 됐는지 의문을 품는다면 편견 섞인 생각이 아닐 수 없겠지만, 그가 인류학을 연구하게 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 구디는 이후 전공을 영문학에서 인류학으로 바꾸기로 마음먹는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영문학도에서 전쟁 포로로 전락한 당시 상황과 수용소에서 읽은 책, 다른 문화권이라 해도 인류의 정신문화는 유사하다는 내용을 담은 (제임스 프레이저 지음) 등이 그에게 큰 영향을 줬다.
영국으로 돌아온 구디는 기존 인류학자들의 연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사적으로 인류를 분석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잡았다. 구디는 세계 문화 전반을 꼼꼼하게 관찰하며 서구 중심의 인류사·문명관을 깨려 했다. 그 결실인 에서 구디는 동양의 발전된 문명을 인정하고 나선다. 1450년까지 동양, 특히 중국은 여러 면에서 유럽보다 혁신적인 사회였음을 시인한다. 16세기까지 도시 생활, 부르주아의 성장, 상업 활동 등의 측면에서 동서양이 아주 비슷한 모양으로 발달해왔다고 말한다.
그가 동서양 문명 발전의 큰 흐름을 읽을 수 있었던 바탕엔 “사람들의 삶이 구조적으로 변화하는 계기에 대한 관찰”이 놓여 있다. 그는 특정 시점과 장소를 편협하게 바라보면서 인류를 해석하지 않고 “어떤 일이 한 곳에서는 일어나는데 다른 곳에서는 왜 일어나지 않는가”를 묻는다.
구디는 인류문명사 연구의 기준으로 혁명 전과 후라는 역사적 기준, 기후와 지리라는 지리학적 이분법을 벗어나 좀더 세밀한 잣대를 만든다. 에서는 요리, 사랑, 문자(글쓰기 문화)의 세 가지 주제로 동서양의 문명을 조망한다. 영문 제목은 ‘Food and Love’. 음식과 사랑이라니, 이 얼마나 인류가 사랑해 마지않는 주제인가. 이렇게 삶과 밀착한 주제로 인류사의 흐름을 읽어낸다. 그동안 학자들의 연구에서 열외로 빠지기 십상이던 아프리카의 문화에도 시선을 두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잭 구디에 따르면, 음식이란 그것을 함께 향유하는 이들을 엮어 읽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재료, 조리법, 입맛 등에 따라 계급과 사회가 나뉜다. 특정 요리의 세계 전파는 그 나라가 문화적 지배력을 갖는 데 큰 몫을 한다. 예컨대 프랑스식 요리법의 파급은 한 시대가 프랑스적인 것으로 변하게 했다. 반면 아프리카 요리가 고급 레스토랑 등에서 취급되지 않는 것은 지속적인 문자와 기록의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기록이 드물었으니 세계에 선보이지 못했고 결국 아프리카 요리가 자본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랑은 자아성찰과 고급의 내러티브 형식, 여성 지위의 확보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성의 지위 확보는 사회 수준의 성장으로 연결되고 사회의 성장은 저 멀리, 문자의 발명을 통해 문명이 발전한 것과도 연결된다. 서구인이 그들 문화의 전유물로만 여기는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중국 시에 자주 등장하던 ‘뜨거운 사랑’의 심상이 그 예다. 반대로 문자의 발명과 상관없이 사랑에 관한 문화는 전 인류가 향유하고 있음도 주장한다. 아프리카 원시 부족인 소말리족 사이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세련된 사랑 담론을 담은 것이 많다는 것이 예다. 이 사례들은 우아하고 로맨틱한 사랑이란 동양과 서양,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 없이 존재한다는 근거로 작용한다.
문명·비문명 구분 없는 세련된 사랑의 노래세 번째로 문자의 발전은 앞서 언급한 음식·사랑의 전파와 맞닿는다. 구디는 문학과 역사 기록의 도구로서 문자를 해석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리에서 나아가 문자의 발명과 상업의 발전을 연결시킨다. 상인들의 손에 들어간 문자는 회계 장부와 거래 기록으로 다시 태어나고, 이의 활용과 발전은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상업의 발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변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두 문화의 교류에서도 촉매로 작용했다.
생활과 밀접한 것을 소재 삼아 잭 구디가 말하려는 것은 한 가지다. 인류의 삶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슷한 모습으로 흘러온 것처럼 세계 문화에서 ‘유사’는 있지만 ‘우열’이란 없다는 것. 어느 나라의 어떤 문화가 현대인의 마음을 얼마만큼 자극하는지에 대해서는 순서를 매겨볼 수 있겠지만, 이는 유행과 대세에 따른 주관적 잣대에 따른 것일 뿐 어떤 것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문화에 우열이 없다는 것을 확고하게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는 서구 중심으로 치우친 이데올로기를 부수거나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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