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날 우리는 자신의 혹은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고 쓰다듬고 만지며 산다. 그날그날의 감정에 따라 눈·코·입이 비슷한 위치에 놓인 것만으로도 사람들 얼굴이 하나처럼 똑같이 보이는가 하면 때로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수만큼 다양하게 보이기도 한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게 얼굴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경영학)는 (마음산책 펴냄)에서 그런 얼굴에 집중했다. “가장 유심히 들여다보고 많이 보는 것이자 나 역시 지닌 것”이 전하는 삶의 메시지를 살폈다.
99개의 얼굴, 99개보다 많은 표정
책에는 58명의 작가가 그리고 만들고 찍은 99점의 얼굴이 있다. 사회적 얼굴, 밥 먹는 얼굴, 추억의 얼굴, 명상의 얼굴, 지워진 얼굴, 우는 얼굴, 욕망의 얼굴, 눈 없는 얼굴, 죽음의 얼굴, 가면의 얼굴 등 10개 주제로 표정을 구획지었다. 그런데 이 10개의 주제로만 얼굴이 읽히지는 않는다. 하나의 얼굴에만 해도 10개가 넘는 감정이 배어 있다. 이런 얼굴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책장마다 깃들어 있으니 이 책은 10개의 주제를 넘어서는, 인생 희로애락의 몇 곱절쯤 되는 감정을 풍성하게 담고 있는 것이다. 그림마다 새겨진 세세한 표정을 눈으로 읽자니 책장 넘어가는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최애경의 그림 은 보는 순간 목구멍이 턱 막힌다. ‘꾸역꾸역’ 밥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고 있는 그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필사적인 투쟁’처럼 밥을 먹고 있는 그 얼굴에는 감히 알은체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단함이 묻어난다. 욕망과 허망이 겹쳐 있는 그 표정과 손짓은 쓸쓸하고 절박하다.
이런 얼굴도 보인다. 김은현의 조소 작품 . 흙으로 빚어 만든 이 얼굴은 웃는 얼굴, 자는 얼굴, 혹은 웃으며 자는 얼굴 같기도 하다. 박영택은 ‘미소’라 말한다. 그가 짐작하기를 “하염없이 흙을 쳐대”다가 “손과 마음이 걸려드는 순간, 적절한 느낌이 들 때 문득 생긴 이미지, 얼굴을 멈춰 세웠다”고 했다. 그의 해석 때문인지 얼굴의 안온함에는 만든 이의 생기 어린 체온이 녹아 있는 듯하다. 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지워진 얼굴’이란 제목으로 엮은 장의 첫 번째 그림을 보았을 때는 멈칫했다. 표지로 내세운 그림이기도 한 양유연의 . 그림 속 아이는 긴 손가락으로 얼굴을 덮었다.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드러난 두 눈은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이 그림에 눈길이 머문 이유는 사실, 내가 자주 하는 손짓이기 때문이다. 당황하거나 재미있거나 슬프거나 졸리거나 생각할 거리가 많을 때, 나는 얼굴을 감싼다. 그러니까 상당히 자주, 저렇게 손으로 온 얼굴을 가리는데, 박영택은 이런 행동을 두고 “자신의 육체를 지우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얼굴을 자주 가린다 고백한다. 글쓴이처럼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어서이든 나처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든 간에 많은 사람들 또한 “다른 이의 시선과 벌이는 피곤한 싸움”에 지쳐 얼굴을 감싼 여러 상황에 대한 기억이 있을 터다.
얼굴은 이렇게, 가려져 보이지 않거나 적나라한 표정을 노출하든 간에 보는 이로 하여금 거기 깃든 미세한 주름의 수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림 속 얼굴에 비치는 ‘나의 얼굴’
책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얼굴들만 담진 않았다. 박영택은 책의 앞머리에서부터 그런 기댈랑 하지 말라고 독자에게 밝힌다. 상투적이지 않아 낯설고, 생경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얼굴이 책의 면면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얼굴들을 모으다 보니 의도와 상관없이 어둡고 슬픈 얼굴이 많았단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접하는 얼굴 이미지들이 “다소 심각하고 그로테스크한” 탓도 있다. 박영택은 이에 대해 “한 시대의 이미지란 결국 당대의 세계관, 삶의 문제, 고통과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의 슬픈 얼굴이, 표정이 책 속에 스며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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