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 펴냄, 각권 1만5500원·1만6500원
시오노 나나미가 15년에 걸쳐 매년 1권씩 모두 15권의 를 써낸 게 2006년 말이고, 그의 나이 70이었다. 10대 때부터 지중해 세계에 매료당해 오로지 독학으로 로마 역사 연구에서 일가를 이루고 한국에서도 드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독특한 이력의 이 일본인 여성이 2년여 만에 새로운 버전의 두툼한 2권짜리 로마 이야기를 또 써냈다. 라는 제목의 이 책은 마지막 제15권을 ‘로마 세계의 종언’으로 끝낸 의 후속작인 셈인데, 어쩌면 그 연작의 진짜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키워드는 ‘해적’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 해안에서 ‘사람사냥’서로마제국이 무너진 것은 서기 476년.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은 투르크 대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1453년까지 존속했으나 팍스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는 이미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 시오노 나나미는 마지막 권을 ‘제국 이후’ 7세기까지 다뤘는데, 이 7세기야말로 제국 로마의 세계가 실질적으로 소멸한 시기라고 본 것이다. 그것은 570년 무함마드의 탄생, 그리고 613년 이슬람교 포교와 더불어 시작됐다.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코란’을 든 이슬람 세력은 635년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이집트를 이슬람화했으며 그 9년 뒤에는 리비아, 7년 뒤엔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차지했다. 불과 1세기 만에 지중해 북안 지역을 뺀 로마제국 옛 영토 대부분을 석권해버린 이슬람 세력의 거침없는 진격이 시작된 것이다.
652년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한 이슬람 해적선이 이탈리아 남서쪽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의 수도 시라쿠사를 습격했다. 이슬람 해적선의 첫 등장이었다. 이후 북아프리카 이슬람 지역에서 계절풍을 타고 떠난 해적선들은 재물과 양식과 노동력을 찾아 이탈리아반도와 프랑스 남부 해안에 쇄도해 들어간다. 무려 1천 년 동안! 북아프리카 이슬람 사회는 이렇다 할 산업도 없이 사회의 존속 자체를 거의 전적으로 기독교 권역에 대한 노략질에 의존했다. 유럽인들은 그들을 ‘사라센인’으로 불렀다. 사라센인에게 해적질은 ‘이슬람의 집’을 넓히고 이교도들을 퇴치하는 ‘성전’(지하드)이기도 했다.
이슬람 해적들은 기동력 좋은 소형 선단을 몰아 해안 지역 마을과 도시들을 휩쓸면서 재물을 약탈했을 뿐 아니라 대규모 ‘사람사냥’을 벌였다. 건장한 남자들은 그들이 탄 배의 노잡이로 삼거나 노예시장에 팔아넘겼으며, 여자들은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역시 가사노예로 팔거나 하렘 등에 넘겼다. ‘목욕장’이라는 이름의 수용소에 갇혀 있던 피랍 기독교도들은 수갑을 찬 채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돈을 내고 이들을 빼내오기 위한 기독교 사제들과 기사들의 구출단체들이 결성되면서 비싼 몸값을 받아낼 수 있는 값진 상품 노릇까지 했다.
오늘날 이탈리아반도와 남프랑스 해안, 시칠리아 등지의 곳곳에 남아 관광명소가 된 ‘사라센 탑’(토레 사라체노·해적이 오는지 살피고 주민에게 피난 신호를 보내기 위한 망루)과 요새화한 수도원들은 모두 그런 수난사의 흔적이며, 그곳에서 해마다 열리는 축제들도 그런 역사의 산물이다.
해적질을 대신한 제국주의 침탈1492년 콜럼버스의 대서양 항해와 같은 시기에 시작된 르네상스까지 1천여 년의 중세를 서기 1000년을 경계로 중세 전기와 중세 후기로 나누는데, 중세 전기에 지중해 세계 주도권을 쥔 것은 이들 이슬람 세력이었다. 중세 후기 기독교권의 해군력 증강 등으로 사그라들던 해적 세력은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서진을 가속하던 오스만투르크의 해적 장려정책으로 다시 크게 번성한다. 15세기 몰타 공방과 레판토 해전 등을 통해 기독교 세계의 반격이 본격화하면서 이슬람의 일방적 우세는 사라졌지만 해적질은 없어지지 않았다. 알제리에서 해적들이 근절된 것은 1830년대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화한 이후였고, 모든 해적 행위를 금한다는 파리선언이 나온 것은 1856년이었다.
서구 열강의 북아프리카 식민지배 이후에야 지중해 해적질이 없어졌다는 얘기는 역설적이다.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이 사라센인의 해적질을 대체했을 뿐이라 읽어도 될까. 그 둘 사이에 무슨 근본적 차이가 있단 말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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