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이 대세다. 1960년대 시장에서 팔던 전기구이 통닭 이후로 이 땅에 치킨이 등장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요즘처럼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월드컵 시즌이라 치킨은 맥주와 함께 강박적으로 소비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주문 폭주로 인한 배달 사고를 피해 치킨을 주문하는 ‘치킨 공략법’이 올라온다.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한명숙 후보는 “당선되면 시청 광장에서 치킨 파티를 하겠다”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치킨은 문화방송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했다. 〈MBC 스페셜〉에 따르면, 전국의 치킨 전문점 수는 3만여 곳, 프랜차이즈 본사는 300개에 이른다. 인구 약 1600명당 한 곳, 400가구당 한 곳꼴로 치킨집이 있단다. 포화상태, 레드오션의 적절한 예시가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랜차이즈들의 홍보 경쟁에 불이 붙는다. 최근 치킨 광고에 기용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아이돌이다. 10대에 한정적이던 아이돌의 인기가 대중적으로 확대되면서, 역시 전 연령에게 인기를 누리는 치킨을 광고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일 테다. 소녀시대(굽네치킨), 원더걸스(BBQ), SS501의 김현중(핫썬치킨), 빅뱅의 대성(BHC), 슈퍼주니어(교촌치킨), 티아라(네네치킨), 샤이니(멕시카나), 포미닛(다사랑치킨), 시크릿(구어스치킨), 브라운아이드걸스(불로만치킨), 2AM(BHC), 비스트(BBQ), 제국의 아이들(맘스치킨), 카라(구어조은닭), 유키스(본스치킨) 등 ‘아이돌이라면 치킨 광고’라는 등식마저 성립될 지경이다.
아이돌의 인기가 대중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은 각 아이돌 그룹에 대한 인지가 특정 연령층과 팬덤의 영역을 넘어섰다는 것과 아이돌 자체에 대한 인지가 높아졌다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2004부터 2006년까지 치킨업계에서 신화, 비, 동방신기 등을 광고모델로 삼았을 때 특정 연령층과 각 모델의 팬을 타깃으로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또한 아이돌 시장 역시 포화상태임을 암시한다. 이전에 SM, DSP, YG, JYP 등 거대기획사를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생산’되던 아이돌은 소규모 기획사들에서도 양산되기에 이르렀다. 기존 팬덤만 가지고는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보니 한정된 연령과 소수의 열정적인 팬들을 끌어모으기보다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 수입원을 넓힌다.
가요 프로그램은 이미 팬서비스 차원에 불과하다.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 아이돌의 주요 무대이며, 케이블 채널의 경우 한 번쯤 자신의 이름을 단 프로그램을 맡아보지 않은 아이돌이 없을 정도다. 라디오 DJ, 드라마 탤런트, 영화배우 및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한다. 각종 축제와 행사의 게스트로 전국을 순회하고, 공연(수익)을 위해 해외로까지 진출한다. 그렇지만 요새 아이돌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건 광고지에서다. 활동으로 높인 인지도가 활용되는 방식이며, 또다시 인지도를 높이는 활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디에서나 나타나는 아이돌이 식상하다는 반응이 심심찮다. 다시금 시장은 포화상태다.
치킨이 대세고, 아이돌이 대세다. 잘 팔리는데, 모두가 잘 팔리는 건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좁은 시장에 뛰어든다. 반드시 한쪽이 패배를 인정해야 끝나는 게임, ‘치킨런’을 한다.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다이어트 하느라 정작 자신은 잘 먹지도 않는 치킨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아이돌의 표정이 왠지 씁쓸하다.
강혜경 중앙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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