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 ‘스타’와 다른 점은 아마도 대체 가능성일 것이다. 아이돌은 소비의 대상일 뿐 숭배의 대상은 아니다. 아이돌이 영웅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아이돌이 스타가 될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이돌이라 할 수 없다. 대부분 아이돌은 그저 아이돌일 뿐이다. 그래서 팬들 혹은 일반 대중은 아이돌을 ‘추억’의 자리에 남겨둔다. 스타는 비록 과거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현재형으로 작동하는 반면, 아이돌의 현재는 빠르게 과거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아이돌 그룹은, 일본의 아이돌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벗어던지려 한다. 그런데도 아이돌의 경쟁은 혹독하기만 하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나 역시 나름 ‘삼촌팬’으로 살아남으려 애써보지만, 이제 새로운 그룹과 멤버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벅차다.
급기야 평균연령 15살을 내세운 걸그룹이 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1명을 포함해 중학교 2학년 5명으로 구성된 6인조 걸그룹 지피베이직(GP Basic)이 그들이다. ‘초딩’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있는데, 걸그룹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약간 충격을 받은 듯하다. 물론 개중에는 갈수록 섹시 이미지만을 강조하는 걸그룹의 현실을 염두에 둔 비판적 시각의 소유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돌의 연령 저하가 야기하는 문제는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의 성공은 청소년들의 잃어버린 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의 현실을 망각할 수 있는 혹은 억압적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아이돌의 모습에서 좇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10대 후반과 20대를 전후로 하는 아이돌 문화는 청소년들이 현재의 자신과는 차별적인, 어쩌면 아슬아슬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리감이 사라진 것이다. 갑자기 초등학생이 무대에 등장해서 춤추고 노래한다. 거리감의 상실 혹은 실종은 주체의 혼란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은 무대 위의 또래 아이돌과의 비교 심리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비교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오빠 혹은 언니, 형의 이미지가 이제 친구 혹은 더 어린 동생의 이미지로 전환되고 마는 것이다.
아이돌은 우상의 대상까지는 아니지만 선망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아이돌에 대한 선망과 동경은 아이돌에 대한 집착 등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도 끼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정한 거리감으로 인해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긍정적 효과도 발휘한다. 그것은 곧 현실과 이상, 혹은 실재와 허구 사이의 적당한 긴장감과 거리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돌의 연령 파괴는 그러한 작동 시스템을 넘어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 결과는? 그것은 아이돌의 가장 광범위한 소비자인 청소년들이 속한 평범한 일상의 파괴다.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연령 파괴나 세대 간 경계 위반 등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을 비롯한 10대 중반 아이돌 그룹의 활동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왠지 한 인간의 성장 과정을 생략하고 마는 것만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든다. 기타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그것은 아이돌 그룹의 데뷔 과정과 실제 활동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연습생 생활을 견디고 성공한 ‘깝권’의 경우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 수많은 어린 탈락자들의 삶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분명한 것은 ‘왜 나이가 문제인가’ 하는 점에 대해 좀더 심도 있고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권경우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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