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가 ‘오빠, 오빠’ 하면 우렁찬 목소리로 ‘소! 녀! 시! 대!’라고 응원한다. 이런 풍경이 눈에 익을 정도로, 그동안 걸그룹에 관한 논의는 주로 남성팬에 대한 이야기로 집중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이를테면 아이돌신의 여성팬들은 걸그룹과 어떤 의미를 주고받을까. 시기하고 질투할까. 남자 아이돌을 보느라고 곁눈질할 겨를조차 없을까. 뿌듯하고 자랑스러울까, 아니면 아니꼬울까.
아닌 게 아니라, 걸그룹에 대해 말을 하는 ‘여덕’(여성팬을 일컫는 ‘여성 덕후’의 준말)들이 있다. 안티팬이라면 여성 아이돌의 품행을 감시하면서 딴죽을 걸곤 한다. 반면 열광하는 팬도 제법 존재한다. 그것도 ‘제법’이라고 말하기엔 겸연쩍을 정도로 많다. 어느 포털 사이트의 통계에 따르면, 여성 아이돌의 팬카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참여한 여성 회원의 비중은 다음과 같다.
카라의 ‘KARA with Polaris’ 14%, f(x)의 ‘샤르망’ 26%, 원더걸스의 ‘월드’ 36%, 소녀시대의 ‘화수은화’ 40%,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에버라스팅’ 54%, 2NE1 산다라박의 미투데이 66%, 포미닛 팬카페 79% 등등. 오히려 여덕이 대세인 경우가 있을 정도니 통념에 비하자면 경이적인 수치라 할 만하다.
실제로 걸그룹에 대한 여덕 팬질이 한창이다. 다음은 어느 여덕의 (Oh!) 패러디다. “음원도 사고 앨범도 샀는데 왜 언닌, 언닌 모르니.” “몰라 몰라 언니 맘을 정말 몰라 눈치 없게 오빠만 챙기네요 어떻게 하나 이 철없는 회사야.” 또 어떤 경우에는 ‘오빠를 사랑해’라는 가사를 ‘Oh, 빠를 사랑해’라고 다시 쓰면서, 사실 소녀들은 성별 구분 없이 모든 ‘빠순이’와 ‘빠돌이’를 좋아한 거라며 유희에 젖기도 한다.
이쯤 되면 걸그룹 전성시대의 한 축에 바로 여덕들이 있다고 말해도 좋지 않을까. 요즘에는 잘 쓰이지 않지만 과거 ‘워너비(wannabe) 신드롬’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마돈나 워너비’에서 유래한 이 말은 여성 팝스타에 대해 여성팬이 열광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스타(특히 마돈나)의 스타일과 상징성을 따라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걸그룹 여덕 현상은 전통적인 워너비 신드롬과 어느 정도 다른 점이 있다. 물론 브아걸·2NE1·포미닛 등의 경우에는 여성팬에게 그녀들 고유의 이상적 여성상을 제공하고 동시에 남성 중심의 성윤리와 성문화를 위협하는 예의 워너비 현상에 견줄 만하다. 그러나 카라·원더걸스·소녀시대같이 이른바 ‘국민 아이돌’ 반열에 오른 걸그룹의 경우에는 스타-팬 사이에 더 평등한 관계가 기입되는 측면이 있다. 우선 ‘너무 예뻐~’ ‘기특하고 대견’한 나머지 ‘우쭈쭈’하다가도, 몰입이 강한 경우에는 ‘하악하악’거리는 감정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워너비 현상에서처럼 ‘너무 멋지다’거나 ‘닮고 싶다’는 표현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희, 태연, 설리와 지영 등은 삼촌들만의 로망이 아니라 여동생·친구·언니들의 로망으로도 받아들여진다. 요컨대 거기에는 카리스마에 대한 열광보다는 자매애·동료애·모성애 같은 우애의 감정이 퍼져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감수성이 어디로 귀결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친밀성에 근거한 관계 방식이 오늘날의 팬덤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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