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내가 속해 있는 웹진 (weiv)에서 지난 10년, 그러니까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발표된 국내외의 중요한 앨범을 뽑은 일이 있다. 그런데 재미 삼아 진행한(집계는 안 했다, 사실 아시아 변두리의 마이너 웹진 순위가 무슨 의미?) 이벤트를 앞두고 개인적으로는 고민을 좀 했다. 순위 매기는 것엔 관심이 없지만 기준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서 나름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국내 앨범에 대해선 ‘한국 대중음악사의 필청 명반’ 같은 식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편견을 깨고 싶었기 때문에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그 앨범의 위치와 맥락을 기준으로 삼았다. 사실은 이게 본론인데, 그중 ‘태양’의 EP앨범 〈HOT〉가 있었다.
태양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빅뱅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면서도 솔로 음악가로 여겨지는 포지셔닝이라든가, 한국인 대중음악가라면 본질적으로 부딪히는 ‘정통성’ 문제를 ‘그대로 따라하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무엇보다 보컬에서 ‘타고난 것’과 ‘훈련된 것’의 조화가 성공적이라는 점이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태양에 기대를 거는 근간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때 나는 개인 블로그에 “그의 성공 유무에 따라 아마도 한국 싱어송라이터·진정성·기획사·아이돌 같은 것들로 연상되는 편견·개념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썼고 지금도 이 생각에 변함은 없다.
최근 발표한 솔로 1집 에 대해서도 그렇다. 같은 곡이 수두룩하면 좋겠다고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태양을 오해했다고 말할 순 없다. 오히려 솔로 데뷔에서 회사(혹은 사람들)가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 애썼다는 인상이 강하다. 어마어마한 걸 내뱉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출발이다.
하지만 태양이 흥미로운 건 다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대중적인 인상은 ‘예의 바르고 진중한 소년’이자 ‘연애 경험이 없는 남자’인데 이 두 가지 이미지가 일종의 ‘아이돌 진정성’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돌 진정성’이란 급조한 말이다. 게다가 이상하다(아이돌에게 진정성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진정성’이란 말 자체가 이상하단 뜻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말을 수긍하게 만드는 건(아니, 기분 탓인가?) 그 발화점이 태양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아이돌인데도 ‘음악적으로 진지한 태도’를 가졌고, 이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높은 가수’로 여긴다.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가뿐히 뛰어넘는 이런 대중적인 태도는 태양이 인터뷰에서 한 “연애도 하고 싶지만…”이란 멘트에 대한 이해로 수렴되기도 한다. 스무 살이 다 되도록 연애할 기회, 요컨대 여자에게 제대로 작업 거는 걸 훈련할 시간도 없던 이 소년의 유일한 취미이자 일상은 곧 ‘음악’이란 말로 들리고, 실제 대부분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대중의 상상 속에서든 실제로 그러하든, 이 순수함과 순결함은 태양을 여느 아이돌 멤버와 확연히 다른 가수로 여기게 한다. 이 진정성이야말로 태양의 음악적 성과를 순수의 연장으로 여기게 만들 뿐 아니라, 거대 기획사 소속 아이돌 멤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예외적 인물로 성장하리라 기대하는 저변으로 작동한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감상일지 모른다(나도 태양의 순진한 미소와 진지한 태도를 좋아하니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든 비평적으로든 태양이라는 아이돌 가수의 행보와 결과물에 주의를 기울이는 건, 그가 아직까지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소년’의 얼굴을 하고 동시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대중음악이고, 아이돌이다. 그렇다면 대중음악 비평이란 그 풍경을 맨눈으로 살피는 일일 것이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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