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 이것들아’ 정도로 해석하면 딱 좋을 ‘셧 오프 보이’(Shut Off Boy)가 반복되다가 노래가 시작된다. 인상적인 인트로다. 7월에 공개된 미스에이(Miss A)의 싱글에는 모두 4곡이 수록되었는데 그중 타이틀곡 (Bad Girl Good Girl)에 대해서만 얘기해보자(어차피 다른 곡들은 거의 들어볼 일도 없을 것이다). 이 곡에 대한 인상은 대략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굉장히 단순한 멜로디가 꼭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랫말이 상당히 도발적이라는 점이다. 그 두 개가 뒤섞이며 미스에이의 (첫)인상과 포지셔닝이 결정된다. 요컨대 ‘센 언니들’로 낙찰이다. 하지만 이건 이미 포미닛과 2NE1이 차지한 위치다. 그 계보를 따지면 디바와 베이비복스로 올라가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미스에이가 이 계보에서 살짝 옆으로 비껴난다는 점이다. 일종의 변이체다.
일단 의 멜로디는 지독하게 관습적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인상은 그 때문이다. 병풍처럼 아득하고 넓게 펼쳐지는 ‘무그 신시사이저’ 반주 앞에서 단순한 테마가 몇 소절씩 반복되는 단순한 구성도 한몫한다. 신시사이저와 전자드럼 정도가 사용된 미니멀한 편성은 복잡하게 쌓아올린 레이어로 점철된 최근 아이돌 가요의 트렌드를 거스른다. 관습적이면서도 신선하게 들린다. 영리한 접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영리한, 혹은 흥미로운 건 노랫말이다. 도발적인 여자에 대해 노래하면서도 관습적인 여성성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왜 나를 판단하니/ 내가 혹시 두려운 거니’와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 그리고 ‘이런 옷 이런 머리 모양으로 이런 춤을 추는 여자는 뻔해/ 네가 더 뻔해’다. 댄스가수, 특히 여자 댄스가수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제대로 겨냥한다. 댄스음악과 여자가수에 대한 편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도발적이고 그래서 차별적이다. 여자들이 더 쉽게 공감할 만하다.
그런데 후렴구는 거기서 선회한다. ‘날 감당할 수 있는 남잘 찾아요/ 진짜 남자를 찾아요’와 ‘(날 불안)해하지 않을 남잔 없나요 자신감이 넘쳐서/ 내가 나일 수 있게 자유롭게 두고 멀리서 바라보는’, 그리고 마침내 ‘춤출 땐 bad girl 사랑은 good girl’로 이어지는 가사는 이 도발적인 여자들이 사실은 ‘진짜 남자’와의 연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포미닛이나 2NE1이 여성의 연대를 확인하는 데서 멈추는 것과는 다른 전개다. 미스에이는 남자를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들 내부에 줄을 긋고 그걸 컨트롤한다.
이들은 소녀시대처럼 수동적이지도 않고 2NE1처럼 공격적이지도 않다. 현대여성답게 주체적인 한편 이성애 연애관계에도 충실하다.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대상화의 여지를 남겨둔다는 점에서 전형적이고, 그 정체성이 결국 관습의 균열에서 가능하단 점에서 신선하다. 굉장한 모순이다. 그런데 이런 모순은 박진영의 한계라기보다는 전략에 가깝다. (진위와 무관하게) 그는 여성 친화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 노래의 도발적이고 신선한 장점을 얘기하다 보면 기획사가 깔아놓은 멍석에 선 기분이 된다. 왠지 찝찝하다. 하지만 어떤 대중음악은 만든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유행가가 그렇다. 이 곡의 작사·작곡을 모두 박진영이 했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미스에이(와 이 노래)를 지지하는 누군가는 (1990년대에 아이돌의 노래를 들었던 나처럼) 자기 삶에 그 흔적을 새기게 될 것이다. 나중에 그것들은 ‘세대적으로’ 어떻게 드러날까. 그게 더 궁금하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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