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아이돌의 어떤(많은) 노래들은 단도직입적이다. 노래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후렴구(또는 ‘코러스’)가 노래의 맨 앞으로 도치되는 일이 훨씬 빈번해졌다(듣는 사람의 귀를 ‘낚는다’(Hook)는 뜻으로 ‘훅송’이라고 부른다). 이전처럼 클라이맥스 부분을 듣기 위해 노래의 중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아니, 기다리지 말라고 강요한다). 핵심부를 단도직입적으로 꺼내놓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 부분을 반복하는 횟수가 증가한다. 이렇게 반복성과 단순성의 강도가 높아지는 대신, 지속성은 떨어진다(금세 지겨워진다). 말하자면 히트곡의 순환이 빨라진다. 얼마 전 세간에 회자됐던 ‘훅송’에 대해 상기해보자. 참으로 이상한 어법(‘훅’이 없는 노래가 도대체 가능한가!)에도 불구하고 어떤 시사점이 있는 것이다.
소녀시대의 (Gee)와 (Oh!)를 보자. 표면적으로 ‘지’는 영어로 ‘어머나’ ‘에구머니’로 번역되는 감탄사이자 ‘놀라다’라는 뜻의 동사이기도 하지만, 노래 속에서 소녀의 감정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나아가 ‘지’와 ‘베이비’라는 단어가 만나 새가 지저귀는 소리(‘지지배배’)를 연상시킨다는 주장과, 컴퓨터 자판에서 영타 상태로 ‘ㅎㄷㄷ’(‘후덜덜’의 첫 자음자)를 친 것일 뿐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도 마찬가지. 이 역시 감탄사이자, ‘오빠’의 첫 글자를 지시한다. 다양한 기의를 내포하는 기표….
이런 사례는 적지 않다. 2PM의 ‘틱톡’(Tik Tok), 샤이니의 (Ring Ding Dong), 티아라의 (Bo Peep Bo Peep), 애프터스쿨의 (AH)까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개 어떤 소리나 모양을 표현하는 단어와 결탁한 노래들인데, 화자의 어떤 정서나 심리적 상태와 연관되곤 한다. 때때로 이런 감탄사나 의성·의태어는 여러 의미를 획득하는 동시에,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게(알 필요도 없게) 돼버린다(너무 많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관심은 이런 단어들이 ‘사운드’와 만나 일으키는 화학작용에 있다. 노래에서 주변적이고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감탄사와 의성·의태어는 이제 노래의 핵심 위치로 등극한다. 그리고 어떤 연결고리를 통해 (또 다른) 의미가 파생된다. “너무 반짝반짝 눈이 부셔 No No No No No/ 너무 깜짝깜짝 놀란 나는 Oh Oh Oh Oh Oh/ 너무 짜릿짜릿 몸이 떨려 Gee Gee Gee Gee Gee.”() “링딩동링딩동/ 링디기딩디기딩딩딩/ 오직 너만 들린다.”() 심지어 기존 어휘가 (마치 감탄사처럼) 원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이상한 방식으로 쪼개지거나 더해지기도 한다. 띄어쓰기 같은 문법은 무시된다. “처 처음처럼 처럼 처럼/ 처 처 처 처음처럼.”(티아라 )
기존의 의미를 위배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기도 하면서 수십 번씩 반복되는 어휘는 어떤 운율과 리듬을 발생시키고, 그러면서 기존 노래에서 대개 멜로디가 수행했던 ‘훅’의 역할을 온전히 맡는다. 그것도 맨 처음부터. 그러는 동안 노래의 수명은 단축된다.
여기서 질문. 이제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똑딱똑딱’(째깍째깍)이 아니라 ‘틱톡’으로, ‘뛰뛰빵빵’이 아니라 ‘치티 치티 뱅뱅’으로 듣게/쓰게 돼버린 것일까.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아이돌 탐구반’은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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