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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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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게 사랑을 허하라

연애도 연기해야 하고 사랑도 관리당하는 아이돌…

그들이 ‘자유’ 연애와 사랑을 쟁취할 때 불공정 계약 문제도 풀리지 않을까
등록 2010-07-21 22:10 수정 2020-05-03 04:26
슈퍼주니어 신동. SM 엔터테인먼트 제공

슈퍼주니어 신동. SM 엔터테인먼트 제공

슈퍼주니어 신동의 결혼 발표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나 역시 기분이 묘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그래서 결혼은 상상한 적도 없는 그런 친구가 결혼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젝스키스의 은지원이나 S.E.S의 슈가 결혼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마도 슈퍼주니어가 아이돌 그룹으로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한창 활동 중인 아이돌 스타의 결혼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아이돌 스타의 결혼이나 사랑, 연애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끔 왕년의 아이돌 스타들이 TV에 나와 자신들 혹은 주변 멤버들의 사랑과 연애에 관한 후일담을 들려주지만,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의 사랑과 연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일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알려질 만한 게 없는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이다. 최근 아이돌 그룹의 현실로 비춰보건대,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해 한 프로그램에서 2NE1의 씨엘이 “데뷔 후 5년간 남자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사장님과 구두로 계약했다”고 밝힌 바 있다(이후 ‘사장님’은 3년으로 줄여주었다고 한다). 인간의 기본적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사랑과 연애까지 관리 대상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더불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언젠가부터 아이돌 스타들은 사랑과 연애까지도 TV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최근 문화방송 에서는 아이돌 스타 커플을 전면에 배치했다. 출연진의 실제 평균 나이는 20대 초반이며, 그들의 일상은 결혼생활이라기보다는 하이틴 로맨스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권과 가인 커플은 실제와 가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둘이 ‘진짜로’ 사귈 수 있어?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가짜’ 커플이라는 사실을. 당사자들이나 대중 모두 TV 속 가짜와 현실(진짜) 사이에서 줄타기를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좀더 본질적인 곳에 있다. 연애와 사랑은 철저하게 사적인 영역이다. 그 주체가 아이돌 스타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사적 영역에서 은밀한 감정 교환이 이뤄지는 것이 바로 사랑과 연애의 기본 조건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사랑과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세트장에서 연출된 감정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아이돌 스타는 젊음을 바탕으로 20대 전후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그렇더라도 문제는 그들의 삶이 20대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월드컵의 승패와 상관없이 축구 선수로서의 삶이 지속되듯이. 그렇다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연애와 사랑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연애와 사랑을 반복하는 것은 아이돌 스타로서의 삶 못지않게 중요한 젊음의 특권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은 관리와 통제 시스템으로 생산된다. 이 시스템에서 사랑과 연애를 할 수 있는 권리는 결국 사회적·정치적 권리와 맞닿아 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이 자유로운 사랑과 연애를 쟁취하는 순간, 여전히 진행형인 불공정 계약 문제도 사라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권경우 문화평론가 nomad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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