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이모는 즐거워? 삼촌은 괴로워?



‘노골적 이모팬’ ‘수줍은 삼촌팬’은 정말로 여성 지위 향상과 남성사회 위기를 반영할까
등록 2010-08-04 07:57 수정 2020-05-02 19:26
이제 아이돌의 팬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지난 5월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소녀시대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제 아이돌의 팬층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지난 5월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린 소녀시대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제부터 어려운 설을 풀어도 이해해달라. 아이돌 팬덤의 진화를 둘러싸고 ‘이모팬덤’과 ‘삼촌팬덤’의 정체성 논쟁이 치열하다. 나이를 생각하면 조금은 주책이 없거나 민망한 이들의 팬덤 ‘커밍아웃’은 흥미롭게도 상이한 정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성 아이돌의 멋진 몸매와 쿨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모팬덤은 자신의 호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안다. 노트북 바탕화면에 ‘식스팩’의 남성 아이돌 사진을 올리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남성 아이돌을 넋 잃고 보아도 별 부끄러움이 없다. 이모들이 조카뻘 아이돌을 조금은 징글맞게 좋아해도 그다지 허물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한 이모팬덤에 비해 삼촌팬덤은 자신의 ‘팬질’을 숨기고 싶어한다. ‘소녀시대’의 CD를 회사로 주문했다 한 달 동안 동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어느 삼촌팬덤의 고백처럼, 그들은 걸그룹을 대놓고 좋아할 수 없다. 혹시나 청순 발랄한 걸그룹 멤버를 성애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오해를 사면 어쩌나, 어린 걸그룹을 쫓아다니는 한심한 성인으로 손가락질하면 어쩌나 노심초사다. 남성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문화적 취향의 성별 선호도가 역전된 예는 극히 드물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일반적으로 이모팬덤의 공공연한 팬질을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성장 효과로, 삼촌팬덤의 조심스러운 팬질을 남성사회의 위기 효과로 본다. 두 팬덤을 섹슈얼리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해석은 상반된다. 이모팬덤이 성애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삼촌팬덤은 그것을 배려와 관심이란 코드로 위장한다. 전자가 가학적이라면 후자는 피학적인 본능을 가진다. 정말 이모팬덤을 여성 지위 향상과 성애적 솔직함의 현상으로, 삼촌팬덤을 남성 지위의 위기와 성애적 위장술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이런 복잡한 해석 따위는 필요 없고, 단지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것?

아마도 마지막 말이 정답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상의 반복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이모팬덤과 삼촌팬덤 현상은 모두 성애적 반응이다. 아이돌 공급자 역시 대부분의 아이돌을 ‘메트로섹슈얼한’ 쿨 가이로, ‘팬시한’ 롤리타로 시장에 출시하고 소비자도 그렇게 소비한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남성의 위기의식 반영이라거나, 혹은 반롤리타적 친밀감의 반응이란 분석은 모두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여성의 정공법과 남성의 위장술에 숨겨진 서사가 무엇인가에 있다. 오히려 이모팬덤의 성애적 공공연함은 여성 지위의 향상이기는커녕 남성사회가 용인하는 대리만족의 퇴행적 시공간을 소비하는 현상이다. 반대로 삼촌팬덤의 위장술은 남성사회의 위기이기는커녕 그것의 건재함을 방증한다. 이모팬덤의 정공법은 외상성 히스테리의 대리 표상물에 대한 반응이고, 삼촌팬덤의 위장술은 오이디푸스 거세공포증에 대한 반응이기 쉽다.

아이돌의 든든한 후원자인 이모팬덤과 삼촌팬덤은 다원화된 문화적 취향의 한 현상에 불과할 수 있다. 내 돈 내고 내가 좋아하는데 웬 히스테리며 웬 콤플렉스? 그러나 어느 국회의원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과 남성 교사들의 어린 학생 성추행 사태를 떠올려보자. 이모팬덤의 자신감과 삼촌팬덤의 나약함이란 표면적 현상은 역으로 실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는 우리 사회 가부장제의 실체를 드러내는 억압된 무의식이 아닐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