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자 아이돌의 이미지를 몇 가지 틀로 정형화하곤 한다. 귀엽거나 청순한 유형, 섹시한 유형, 그도 아니면 무성적·중성적 유형 등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하거나, 도발적인 구애를 보여주거나, 여성의 당당한 자의식을 상찬하는 식의 범주화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단명’하지는 않더라도 ‘장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연기자나 뮤지컬 배우? 예능인? 그도 아니면 사라지고 잊혀진다.
그런 점에서 나르샤는 흥미롭다. 애초부터 어린 세대를 겨낭하지 않았던 브라운아이드걸스(브아걸) 출신인 나르샤는 (애프터스쿨의 가희와 더불어) ‘성인돌’의 지존이다. 브아걸을 통해 초창기와는 다른, 트렌디하면서도 진일보한 음악적 성과를 견인해내더니, 몇몇 프로그램을 통해 ‘개그돌’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방송된,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 (리얼리티라기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한국방송 에서 그녀는 민망할 수도 있을 ‘성인돌’ 이미지를 천연덕스럽게 개그 코드로 전유한다. 누구보다도 빨리 무를 이빨로 갈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과 두 개를 가슴에 넣거나, 가슴을 소재로 한 삼행시를 짓는다. 실재하는 듯하면서도 교과서적으로 상상된 시골을 배경으로, 아이돌 소녀들이 해사하게 웃고 망가지고 화목해지는 모습만을 담는 이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는 유보한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음악 무대에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예능 이미지가 걸그룹 멤버들에 의해 어떻게 소구되는지 이 프로그램이 잘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생존법은 낯설지 않다. 가수 활동을 유지하면서 예능 이미지를 결탁해 오래 생존해온, 선구적이자 독보적인 모델은 이효리다. 그녀는 소녀그룹 시절의 청순한 이미지를 섹시하고 관능적인 캐릭터로 전복하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예능에서의 털털하고 소탈한 이미지를 동시에 각인시켰다(앞으로 음악적 성과를 획득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더 높아졌지만). 나르샤는 (예능에서의) 털털한 이미지와 (무대나 뮤직비디오에서의) 도발적 이미지 사이를 오가며 ‘포스트 이효리’로서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가수로서의 나르샤는? 최근 발표한 그녀의 솔로 EP 음반 타이틀 곡 의 뮤직비디오를 보자. 남성의 꿈속에서 관음증적 시선으로 포착되는 것은, 고혹적이지만 강렬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팜므파탈부터 ‘부러진 날개를 가진 천사’까지, 성녀와 악녀를 포괄하는 이미지다. 이같은 관습화된 여성상을, 브아걸의 3집에서 성공했던 트렌디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다시금 불러내 요약하는 셈이다.
이처럼 예능과 음악 사이의 극단적인 이미지 교차는 몇몇 아이돌 그룹 멤버도 조건을 달리해 시험 적용 중이며(가령 애절한 발라드를 부르는 2AM의 조권은 예능 프로그램의 ‘깝권’과 충돌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꽤 유효한 마케팅 포인트로 자리잡고 있다. 이 모델이 얼마나 더 오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극단적으로 오가는 캐릭터 역시 씁쓸하게도 시장이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여성 아이돌에게는 더 엄정하고 냉혹하다. 그러니 나르샤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영리하게 ‘장수법’을 터득하기를, 무엇보다 음악적으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오래도록 쌓을 수 있기를.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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