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삼성반도체의 제조 공정에서 발암성 물질 6종이 사용된 사실을 확인한 기사를 811호에 실었다. (에코리브르 펴냄)는 지구상에 숱하게 널린 ‘삼성반도체의 닮은꼴’들을 나열한다.
생활용품 틈새에 스며든 독
이를테면 터키의 샌드블래스팅 작업장 같은 곳. 샌드블래스팅은 고운 모래 같은 입자를 압축공기 등으로 강하게 분사하는 작업이다. 터키에서는 먼지가 많이 발생하는 건설 현장에서 페인트를 칠하기 전에 금속 성분을 청소하기 위해, 혹은 빳빳하고 색이 진한 새 청바지를 멋스럽게 낡은 것처럼 만들 때 이 공법을 쓰곤 한다. 공정은 주로 소규모 작업장에서 이뤄지는데, 노동자 중에는 열네댓 살의 아이들도 끼어 있다. 먼지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전혀 갖추지 않는다. 그래서 샌드블래스팅 노동자는 10대 때부터 규소폐증을 앓는다. 폐에 서서히 상처를 내는 규소폐증에 걸리면 숨이 차고 얼굴빛이 흙처럼 검게 변한다. 이들의 모습과, 작업 라인에 서서 쉼없이 코피를 흘리거나 하혈을 하고 백혈병 진단을 받거나 유산을 하고 심지어 생명을 잃기도 한 새파란 청춘의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오버랩된다.
노동자의 잔혹한 작업 환경은 개선되어야 하고 노동으로 인한 발병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산업혁명 이래로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러나 산업사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고 더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며 노동자의 건강을 향해 검은 혀를 날름거린다. 왜일까? 미국 산업의학 전문의인 저자 폴 디 블랭크는 노동자가 처한 열악한 현실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심각하고 치열하게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늘 마주하는 크고 작은 생활용품에는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이 교묘하게 숨어 있다. 레이온으로 만든 스카프, 현관문의 놋쇠 손잡이, 정원의 벤치로 쓰인 나무 널빤지 같은 것은 화학물질에 예민한 이들의 일상을 방해하고, 제품을 생산하면서 매일매일 이런 물질에 노출되는 작업자의 내장과 숨통을 갉아먹는다. 실상 “직업과 환경이 주는 위험에 절대적인 경계란 없으며” 위험물질을 재료로 한 생산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불어대던 색색의 고무풍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데 사용하던 유아용 젖꼭지와 고무 장난감 등을 생각해보자. 이 때문에 일터에서 “미쳐가는” 노동자가 있었다. 이황화탄소는 자연적으로는 극소량만 발생하는, 활화산 입구 부근에서나 겨우 피어나는 물질이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영국의 고무 공장들은 고무로 만드는 작은 소비재를 찍어내기 위해 이황화탄소 용액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황화탄소 공정은 주로 소규모 작업장의 실내에서 이뤄졌고, 고무 공장들은 이 유용한 용액을 더 많은 공정에 응용했다. 곧이어 노동자들은 머리가 쪼개질 듯한 두통에 시달렸고 알코올 의존자처럼 이황화탄소 증기를 흡인해야만 평정한 정신 상태를 찾았다. 그들은 때때로 급성 정신병자가 되어 공장 꼭대기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공장은 노동자에 대한 어떤 보호 조처도 없이, 노동자가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작업장에 쇠창살만 그었다.
이밖에도 생산 환경은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일으키고, 석면질환·손목굴증후군(특정 신체 부위를 반복적으로 썼을 때 중요한 신경이나 힘줄이 손상되는 병)·업무탈진·일중독 등 인간을 앓게 하는 많은 질환을 야기한다.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인 질환들저자는 “한쪽 범위에서 도입된 변화는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으며 다른 범위까지 넘쳐 흐르”며 환자를 확산시킨다고 말한다. “기술과 산업이 한 단계 혁신할 때마다 직장과 가정, 그리고 그보다 더 광범위한 환경이 지속적인 위험에 처하고 새로운 독성물질이 잠재적으로 생겨나 위협을 가하는” 현실에 우리는 놓여 있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그의 희곡에서 말했다. “백연 공장 노동자 한 명이 주당 9실링을 받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다가 납중독으로 죽었어요. 그는 손만 마비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목숨까지 잃었어요.” 참으로 섬뜩한 노동의 일상 아닌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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