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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지도 제작자



지도의 오류를 지적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경험까지 더하는 ‘집단지성’의 산물,
내비게이션과 증강현실의 세계
등록 2010-06-17 21:32 수정 2020-05-03 04:26
지도의 오류를 지적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경험까지 더하는 ‘집단지성’의 산물, 내비게이션과 증강현실의 세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도의 오류를 지적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경험까지 더하는 ‘집단지성’의 산물, 내비게이션과 증강현실의 세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측량을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욕망이 존재한다.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재어보려는 욕망 말이다. 그런 탓인지, 어느 틈엔가 나는 모든 상황을 내 몸으로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감을 견디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이 돼버렸다. 하지만 측량의 세계에 더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노력하는 한, 인간은 잘못을 범한다’라는 괴테의 말을 이해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측량의 세계에는 근사치만 있지, 참값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측량이란 완전해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익히는 일이다.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재어보면 분명 참값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것을 도면으로 옮길 때는 참값을 포기해야만 한다.”(김연수, )

일제시대 만철(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측량기사 ‘나’로부터 2010년의 지도는 멀리 달아났다. 허허벌판에 나침반과 수평기를 들고 서 있지 않다. 하늘에서 정사하고 인공위성의 신호를 받는다. 하지만 지도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자면 불완전함을 메우는 방법은 ‘몸’이다. 몸의 참값이 그대로 옮겨지는 것이다. 몸이 그대로 지도가 되는 것이다. 그 완벽한 지도의 축척은 1:1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21세기 지도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하지만 지도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축척 1:1의 지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집단지성’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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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엠앤소프트의 민두홍 주임이 제보를 바탕으로 지도를 ‘취득’ 중이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주)엠앤소프트의 민두홍 주임이 제보를 바탕으로 지도를 ‘취득’ 중이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근삿값을 근사하게 만드는 집단지성

태양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경기 파주 교하신도시 6차선 도로. 한가한 도로에 “대한측량협회 심사 디지털 지도 구축 중” 차가 천천히 들어서고 있다. 차량 안 보조석의 컴퓨터에는 화면 가득 지도가 띄워져 있다. 마우스를 잡은 손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6차선 초입의 지도에 ‘3차원 배경 화면 삽입’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띄운다. 전진하면서 차의 궤적은 지도에 점점이 박힌다. 차는 1km가량을 직진한 뒤 컴퓨터 지도에 이미 표시된 도로와 만난다. 점멸하는 신호등을 바라보는 지점, 마우스가 딸깍하면서 십자 표시를 띄운다. 좌회전과 유턴이 가능하다는 표시다. 차량 위에 장착된 카메라 영상은 도로를 찍고 있다. 네 대의 카메라는 차량 전면을 사분해 나눠서 찍는다. 차량 내의 컴퓨터로 4개가 합쳐진 화면을 확인할 수 있다.

차량은 유턴해서 도로를 되짚어 올라간다. 지도 위 궤적은 두 줄로 표시된다. 6차선 도로는 오른쪽으로 산길과 연결돼 있다. 차는 산길로 들어간다. 산속으로 들어가니 찍히는 궤적이 드물어진다. 위성항법장치(GPS) 수신율이 낮아져서다. 브레이크를 여러 번 밟은 구불구불한 길은, 지도 위에서 완곡이 확연하게 떠오른다. 정면에 교회 건물이 나타난다. 지도에 표시된 건물에 ‘백양교회’ 글자를 띄운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굽은 길로 내처 간다. 곧 차량은 진입할 수 없는 막다른 길과 만난다. ‘도로 진출 불가’가 다시 지도 위에 뜬다.

보조석에 앉은 (주)엠앤소프트 민두홍 주임은 6차선 도로의 이름에 ‘숲속노을길’을 집어넣는다. 오른쪽 고양(일산), 위쪽 ‘문발공단·교하도서관·교하중고등학교’라고 적힌 표지판의 왼쪽 길, 목적지도 없는 새길이다. (주)엠앤소프트는 내비게이션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다. 민두홍 주임은 ‘지도 취득’을 위해 실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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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지도에 표시됨으로써, 앞으로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부일초등학교를 찾아가는 사람은 삽다리에서 신도산업을 지나 빙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백양교회를 찾아가는 사람은 교회 앞까지 이어진 구불구불한 길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는 현실에 다가가고 있다. 근삿값은 근사해지고 있다. 지도가 현실을 점점 닮아가는 것은 제보 덕분이다.

스마트폰의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은 서 있는 지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브제, 아이니드커피, 스캔서치.

스마트폰의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은 서 있는 지도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브제, 아이니드커피, 스캔서치.

오류를 지적하는 점조직, 이용자들

5월13일 김성민씨가 경기 파주시 교하읍 동패리에 6차선 도로가 새로 생겼다고 제보했다. 회사 홈페이지의 ‘지도 오류 등록’ 메뉴를 통한 PPR(Product Problem Report·6월 말 ‘좋은 지도 만들기’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이다. “제목: 일부 도로 개통 구간/ 두일중학교 쪽에서 연결된 도로가 일부 개통됐습니다. 삽다리 사거리와 연결되는 길과 연결됐네요.” 회사 내 실사팀은 이 자료를 바탕으로 도로 정보를 ‘취득’하러 현장으로 출동했다. ‘취득’ 뒤 제보자에게 전자우편이 보내졌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이 의뢰하신 지점은 실사 후 반영되었습니다. 반영 내용은 차기 맵 업데이트 2010년 7월 정기 업데이트에 적용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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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처음 도입된 뒤 2010년 6월8일까지 접수된 PPR는 19만7975건. 지난해 4만1486건. 하루에 113건꼴이다. PPR는 조직적인 제보다. 제보 유형을 분류하고 지도상에 위치를 표시하고 오류 내용을 요약한다. “건물이 잘못 표시됐고 도로까지 이르는 길이 다릅니다.” “제3경인고속도로의 길 표시가 잘못됐습니다.” “구금산터널에서 광명신도시 방향 도로 표시가 다릅니다.” “방지턱이 없는데 표시돼 있습니다.” 내비게이션 이용자들은 전국에 뿌려진 점조직 요원처럼 기민하게 활동한다.

이승주(30)씨는 지금까지 2300여 건의 PPR를 접수했다. 제보를 시작한 것은 자신이 거주하던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길이 나오지 않아서다. 4년 전 차를 산 뒤 내비게이션을 구동해보았는데, 표시 안 된 길이 많았다. 직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을 빙 돌아가도록 안내하곤 했다. “시골 지역이라 차 한 대 반 정도 너비의 길이 많은데, 그런 길이 (내비게이션에) 없더라고요. 출퇴근 때 이용하는 길만큼이라도 표시됐으면 해서 제보했지요.” 물론 그가 잘 아는 길이다. 그러니 내비게이션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길인 셈이다. ‘제보’의 또 다른 이름은 ‘홍익’이다.

“제보 뒤 업그레이드를 했는데, 내비게이션에 표시 안 됐던 길 위에 있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후로는 어디를 가더라도 내비게이션과 실제 거리를 비교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비게이션에서 좌회전 표시가 있으면 정말 길이 있나, 가능한가 하고 유심히 봅니다.” 다 아는 길도 가끔 내비게이션으로 확인한다. “서울 여의도 GS주유소 앞에서 좌회전하면 서강대교, 우회전하면 마포대교를 타는 교차로가 있는데요, 평일은 우회전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서강대교를 타라고 하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지요.” PPR를 많이 했다고 해서 특별히 상을 받은 것은 없다. 내비게이션이 틀렸다고 투덜거리는 대신, 부러 시간을 투자해 작성한 PPR 때문에 내비게이션은 점점 더 정확해지는 것이다.

“나를 지도로 그려본다고 치자. 땅에서 측량해서 그리는 지도가 있고 하늘에서 사진으로 찍어 판독하는 지도가 있다. 그 두 개의 지도는 서로 같은 것이면서도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 그런데도 나는 애써 하나의 지도만을 바라봤을 뿐이다. 고통은 거기서 시작됐다.”(김연수, )

지도는 하나일 수 없다. 세상이 입체인데, 평면인 지도가 ‘절대’를 우길 수 없다. 21세기에는 하늘에서 본 지도가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는 지도도 있다. 공간을 모로 저며낸 지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지도의 제작자는 지도 앞에 서 있는 한명 한명이다.

조소현(아이디 ‘러브블러’)씨는 밥 먹으러 가서 지도를 만든다. 식당에 가서 “김치찌개가 맛있는 삼겹살집” “주꾸미집. 주꾸미 철판 혹은 숯불구이… 맛있어요- 뼈 없는 닭발도 쵝오!!!! 매우면 계란말이로… 입가심- 그리고 마지막에 볶아먹는 밥은 쵝오-! 과식을 부르는 곳. 그러나 불친절… 포스 짱!!!!” 등의 감상문을 집어넣는다. 지도의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넨다. “와우 새벽까지 하시는군요-!! 홍대에 가면 들러봐야겠어요~^^” 조소현씨가 이용하는 것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오브제’(ovjet)다. 오브제는 사람을 포함해 지도상에 나오는 사물 전체에 게시판이 있다. 조소현씨가 ‘신기’해서 시작한 ‘오브제질’은, 아무것도 없는 땅에 깃발을 꽂고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는 ‘선구자’적 재미에 멈출 줄 모른다.

오브제는 누워 있던 지도를 일으켜 세운다. 오브제를 구동하면 스마트폰(의 카메라)이 바라보는 대로 화면에 펼쳐준다. 낮에 하늘을 보면 날씨 정보가 나오고, 밤에 하늘을 보면 별자리를 보여준다. 오브제는 지도와 전화번호, 업종 등의 정보를 탑재하고 출발했다. 그리고 ‘무한개의 게시판을 만들 수 있다’는 툴이 포함됐다. 이 툴이 수많은 정보를 갈고리로 긁듯이 축적한다. 2월 말에 오픈한 뒤로 하루에 500~1천 건의 정보가 올라오고 있다. 오브제를 운영하는 키위플의 최종환 이사는 말한다. “오브제는 내 눈앞에서 내 관심 대상물을 찾는 것이 1차, 그 대상물에 의견을 쓰며 재창조하는 것이 2차 과정이다.”

위치 태그를 통해 이용자의 경험이 지도에 추가로 표시된다. 다음 지도의 이용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전체의 10%다. 이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위치 태그를 통해 이용자의 경험이 지도에 추가로 표시된다. 다음 지도의 이용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전체의 10%다. 이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증강현실’이다. 한국에서 증강현실은 “이름표를 붙여줘” 방식으로 먼저 다가왔다. 스마트폰을 켜고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면 위치 정보를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반경 1km 이내의 커피숍을 알려주는 ‘INeedCoffee’, 약국을 알려주는 ‘ARpharm’ 등이 대표적인 애플리케이션이다. 사용자는 정보를 이용만 하지 않는다. 증강현실은 사용자들의 정보에 의해 증강된다. 오브제, 스캔서치, 레이어 등은 사용자가 입력한 정보를 보여준다. 이렇게 지도가 몇 겹으로 부풀어오른다.

사용자의 경험까지 표시되는 입체지도

포털 다음 내의 카페-블로그-티스토리에는 ‘지도 발행 기능’이 있다. 블로그에서 위치 태그를 작성하면 글 아래에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붙는다. 아래에는 ‘다음 지도에 발행됐습니다’라고 표시된다. ‘다음 지도’에서 위치 태그의 장소로 가면 이 블로그로 작성한 글이, 같은 위치 태그로 작성된 글과 함께 정렬되어 보인다. 장소는 이렇게 스토리를 가진다.

현재 다음지도 콘텐츠의 10%가 사용자들이 입력한 정보다. 2009년 7월 말 시작한 ‘지도 발행 기능’이 순식간에 정보를 추가해내고 있다. 다음 쪽은 지난 6개월 사이에 4~5배 위치 태그를 통한 정보가 늘어났다고 말한다.

정대중 다음 로컬서비스 팀장은 인터넷 시대의 지도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 지도에는 지명과 음식점명만 표시됐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지도에는 ‘강남 맛집’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검색도 된다. 지도가 추상적인 정보를 담게 된다. ‘경험’이 지도 위에 표시되는 것이다.”

2010년 우리 모두가 지도 제작자다.

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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