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요리 재료를 사다 놓으면 요리해주는 ‘돌봄 서비스’는 없습니까.
3월22일 눈이 내렸다. 얼른 집에 가야 했다. 오늘 저녁 식탁엔 뭐가 올라와 있을까? 사무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기만 기다리며 머릿속에서 내내 떠올린 생각이다. ICIF(이탈리아 요리학교) 나온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만나러? 의외로 요리사들이 집에서는 자장면 시켜먹는다고 하더라. 게다가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대신 ‘우렁각시’가 있다. 내가 사는 서울 마포구는 올 초부터 독신남성을 위한 복지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찾아가는 독신남 돌봄이’라는 서비스다. 차상위층 노인 방문 의료 서비스와 비슷하다. 요리사가 일주일에 한 번 집으로 찾아와 저녁밥을 차려준다.
프로그램은 일종의 재능 기부 형식으로 이뤄진다. 마포구청은 재능 있고 젊은 요리사를 섭외한다. 일주일에 몇 시간 저녁 식사를 해주는 조건이다. 물론, 수고비가 있다. 독신남성이 구청 홈페이지에 신청서를 낸다. 단, 음식 재료는 그날 냉장고에 있거나 가까운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에 한한다. 구민 중에 예술가·출판인 등 독신남이 많은 점에 착안해 마포구청이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일주일 전 저녁때 처음 케니 김을 만났다. 1981년생인데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공부보다 요리가 좋았다. 2년 전 한국에 홀로 돌아와 서울 청담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그가 지난주에 차린 식탁을 보고 입이 벌어졌다. 푹 익은 파김치를 적당히 씻고 잘라 만든 파김치 파스타를 한입 넣었다. 맛의 궁합은 환상적이었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산, 먹다 남긴 크루아상을 바라보며 그는 씩 웃었다. 가방에서 푸아그라 병을 꺼냈다. 푸아그라를 천천히 빵에 발라 건넸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인 오늘 저녁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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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뚫고 헐레벌떡 뛰어들어간 내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출산이 애국’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에 지자체에서 독신남성에게 예산을 쓸 리 없다. 미국에서 자란 케니 김도, 파김치 파스타도 썰렁한 상상일 뿐이다. 그렇다. “입만 살아가지고….”
누구도 독신남성을 보살피지 않는다. 독신남성에게 생활인의 감각은 필수다. 고양이가 혀로 털 손질을 하고, 토끼가 굴 청소를 하는 것처럼 ‘먹고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없으면 안 된다. 동정 없는 서울에서 13년째 독신남으로 살고 있다. 이제야 아무 대가 없이 나만을 위해 요리해주는 우렁각시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앞으로 쓸 이 칼럼을 ‘요리 일기’ 같은 단어로 표현하는 건 민망하다. 그냥 독신 수컷이 누구와, 어떻게 먹이를 마련하는지 요리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레시피나 식재료가 거창할 리, 만무하다. 말하자면, 3월22일 밤 내가 직접 차렸던 차가운 저녁 식사에 대한 이야기다. 폭설이 오던 밤의.
고나무 기자 한겨레 ESC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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