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디에서 왔니?” 국민 남동생 이승기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보는 게 아니다. 국민 아저씨 이경규와 김구라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한다. “당신 어느 별에서 왔습니까?” 사교댄스에 빠져 있는 주부도, 고양이 인형을 모으는 아가씨도, 혼자 골방에 처박혀 있는 히키코모리도 이들에겐 지구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요, 나 화성인인에요. 그런데 그냥 지구에서 살면 안 되나요?”
tvN의 가 적지 않은 풍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만화 캐릭터와 결혼 준비 중인 십덕후 화성인’ 편의 후폭풍이 거세다. ‘십덕후’란 오덕후+오덕후, 그러니까 자기만의 관심사에 빠져 세상과 유리된 생활을 하고 있는 오타쿠 중에서도 보통의 경지를 뛰어넘는 경우를 말한다. 그 어감 때문에 경멸의 의미도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화성인으로 등장한 이 남자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다 못해 현실 속에서도 그녀와 연애 관계를 만들고 있다. DVD와 온갖 캐릭터 아이템을 마구잡이로 구입하는 것은 당연하고, 쿠션형 인형을 끌어안고 즐기다 못해 집 밖으로 나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즐긴다. 이제는 그녀와 결혼하겠다며 웨딩사진 촬영까지 하게 될 지경이다.
사실 일본 문화를 익히 접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놀라운 모습은 아니었다. 드라마 에서도 만날 수 있고,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는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캐릭터다. 그러나 가 재미있는 점은 진짜 이 정도의 오덕후가 일본이 아니라 한국에 실존한다는 것이고, 또 그를 스튜디오에까지 초대해 제대로 자기를 표현할 시간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십덕후 화성인은 이들이 캐릭터 인형을 만지자 “남의 여자친구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에요”라고 버럭 화를 내며 자신의 세계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이 남자 때문에 더 이상 덕후 못하겠다는 ‘탈덕 선언’까지 나오는 걸 보니 그 충격파가 적지 않았나 보다.
와 은 어쨌든 눈이 가는 프로그램이다. ‘일본의 펭귄 홀릭남’ 편은 저런 정도를 굳이 일본까지 찾아가 만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심심했다. ‘G컵이 되고 싶은 F컵 가슴녀’도 결국 선정성 외에 진짜 화성인으로 느껴질 만한 임팩트는 없었다. 그러나 폭소를 동반한 진한 깨달음을 던져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백수연대 대표’ 편에서는 백조 모자를 쓴 그가 고양이 인형을 든 낸시 랭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해프닝 예술가와 화성인의 차이는 뭘까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등 우리 주변의 기인·괴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항상 존재해왔다. 그런데 점점 그들의 자신감이 커지고 있는 게 보인다. 다소 과장과 연출이 들어가 있지만, 우리 사회의 견고한 상식을 뒤흔들며 “화성인이지만 행복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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