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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웃긴데, 글로 표현할 수가 없네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
등록 2010-06-09 21:59 수정 2020-05-03 04:26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

라디오 〈두시탈출 컬투쇼〉

웃음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 깜깜한 영화관이나 자기 안방에서라면 분비물을 토해내며 깔깔대도 좋다. 하나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데서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간 주위의 눈총을 화살처럼 맞으리라. 그래도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면, 라도 보고 있냐며 고개를 돌릴 것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어폰 하나를 귀에 꽂고 있다가 자지러지는 사태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음악보다 웃음에 목숨을 걸고 있는 라디오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최고의 입담꾼을 불러 청취자를 웃겨보려고 별의별 쇼를 다 한다. 그 주옥같은 에피소드들은 다시 듣기와 MP3로 제공돼 무한반복 청취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라디오 무한 경쟁의 시대를 지배하는 절대의 영웅이 있으니, 바로 다.

쇼의 인기 덕분에 케이블TV에서 편집본이 방영되고 있는데, 그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대본 연습은 거의 없이, 거의 두 사람의 즉흥적인 멘트로 진행된다. 게다가 의자를 뒤집어 올라탄 정찬우의 모습처럼 대체로 건성건성이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뭐니뭐니 해도 청취자들의 사연 덕분이다.

신종 플루로 조퇴해보겠다고 드라이기로 귀를 덥힌 고등학생, 양호실 갔더니 체온이 80도에 육박. 공원에서 운동하다 멀리서 성기를 노출한 남자가 뛰어오기에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허리에 줄넘기를 묶고 조깅하던 중. 이런 사연들은 인터넷에 전설로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컬투의 맛깔나는 목소리 연기와 아닌 건 아니라는 솔직한 평가와 함께 듣는 것이 제맛이다.

어느 여행 가이드는 시골 부녀회 분들을 모시고 타이 여행을 갔는데, 이들이 현지 공항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더란다. 찾아가보니 입국 담당자와 싸우고 있는 부녀회장님. “이놈이 버스표를 달래. 우린 비행기 타고 왔는데.” 타이식 발음으로 “빠스포”(패스포트)를 달라는 걸 잘못 알아들은 것. 겨우 의사소통이 끝났는데도 입국 담당자는 이들을 들여보낼 수 없단다. “도대체 너무 똑같아,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것. 12명의 부녀회 여행단은 외국 가신다고 동네 미용실에서 평소 3만원 하는 파마를 2만원에 공동구매해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군대 이야기가 빠지겠나? 인근 부대에서 고참 7명을 영창에 보낸 고문관 신 이병이 배속돼왔다. 그의 관물대를 뒤지다 짱돌을 발견한 병장.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비밀 병기 8호, 나를 괴롭히는 자는 이 돌로 처절히 응징하겠다.” 놀란 병장, 그래도 머리가 좀 돌아갔다. “이 짱돌이 8호면 1호부터 7호는?” 그래서 부하들을 시켜 내무반을 뒤졌더니, 샤프, 철모, 군번줄이 호수를 달고 등장했다. 그리고 상관에게 보고했더니. “야 인마, 8호가 마지막이라는 보장이 어딨어?” 역시 계급장은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었구나. 주옥같은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정말 웃긴데, 이걸 글로 표현할 수가 없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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