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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거지였을 때 생각나?

빌 게이츠 vs 스티브 잡스
등록 2010-06-16 20:33 수정 2020-05-03 04:26
빌 게이츠 vs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vs 스티브 잡스

갤럭시 S와 애플 4의 출시로 시끄러웠던 한 주. 마치 인기 소녀그룹들이 동시에 앨범을 발표한 듯, 인터넷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누구 몸매가 잘 빠졌다는 둥, 누구 안무가 대박이라는 둥, 누가 팬서비스를 잘한다는 둥…. 설왕설래로 뜨거워진 네트워크를 촉촉이 적셔주는 개그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두 사람이 공개 석상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빌 게이츠 왈, “어제 대출 때문에 은행에 갔었는데”. 스티브 잡스, “대출이 왜 필요해?”. 빌 게이츠, “나 말고 은행이”. 두 사람이 동시에 ‘씨익’ 웃는다. 두 사람의 사진을 교묘하게 캡처해서 말풍선을 단 유머 시리즈인데, 한때 대유행했던 ‘조삼모사’처럼 말만 바꿔가며 포복절도할 시리즈를 퍼뜨려가고 있다.

대표적인 패턴은 ‘행복전도사’가 떠오르는 두 정보기술(IT) 갑부의 ‘부자 친구 놀이’다. 거지 편. “우리 거지였을 때 생각나?” “아니.” “나도.” 씨익. 동전 편. “우리 동전 뒤집기로 결정하자.” “뭘 뒤집어?” (동전이 뭔지 모름) 씨익. 부가티 자동차 편. “아, 내가 어제 부가티를 샀는데.” “아 그 최신형?” “아니 회사를.” 속세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돈을 주물럭거리는 이들의 대화니 그저 허탈할 따름이다.

이 유머의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두 사람이 동시에 ‘씨익’ 하고 웃는 모습이다. 업계의 최대 라이벌인 둘의 사이가 절대 좋지 못하다는 걸 알기에 그들이 함께 웃는 장면 자체가 상식을 깬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밤낮 컴퓨터 앞에만 있던 따분한 괴짜(nerd)들이 누구도 범접 못할 위치에 올라가 세상을 주물럭거리고 있으니 그들 서로가 아니면 누가 그 마음을 알아주겠나? 이 시리즈의 본질은 바로 거기에 있다. 노벨상 편은 이들의 이런 키득키득을 잘 보여준다. 잡스가 먼저 말한다. “너 노벨상 탔다며.” “응, 두 번이야. 경제학하고 의학.” “어떻게?” “사람들한테 치질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되었거든.”

아마도 시리즈는 당분간 증식해나갈 것 같다. 특히 스마트폰에 관련된 뉴스가 등장할 때마다 그 상황을 비꼰 에피소드를 기대하게 된다. 이런 풍자감이 최고인 것은 갤럭시 편. 빌 게이츠가 먼저 말한다. “어제 갤럭시 샀는데.” “아, 삼성폰?” “아니 LA 갤럭시(축구팀).” 아이폰과 갤럭시폰의 품질을 비교하는 시리즈는 제품에 대한 세간의 품평을 아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요즘 IT 뉴스는 스포츠나 정치보다 흥미진진하다. 반마이크로소프트 전선의 오랜 동지였던 구글의 에릭 슈미트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요즘 서로 막말이다. “나는 (애플 같은) 북한에 살고 싶지 않다.” “포르노를 보고 싶으면 구글 안드로이드폰을 사라.” 이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도 기대된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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