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귀의〈정열맨〉
여기나 저기나 근육 자랑이다. 바닷가나 수영장에선 미끈한 비키니보다 탄탄한 ‘식스팩’이 더 뜨거운 시선을 받는다. 새로 꾸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모여든 젊은 남성들은 이 아니라 를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남자 연예인들의 웃통 까기 경쟁에는 탤런트·가수·모델과 더불어 개그맨까지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웃기려면 헬스클럽부터 다녀야 할 기세인가.
만화도 예외는 아니다. 의 김성모가 그 울끈불끈한 근육과 화려한 입담으로 대한민국 남성을 사로잡던 시절이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귀귀의 이 있다. 좌충우돌 무협액션 학원 개그만화라는 신개념 장르로 인터넷을 달군 문제아가 두 번째 단행본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오늘도 아침 밥상에 ‘오징어덮밥’이 올라와 있기를 간절히 원하며 기상하는 새 나라의 고등학생 정열맨, 이발소 아저씨의 실수로 망신스러운 ‘수염컷’을 얻고 온몸의 기가 뚫린 허새만, 여기에 고수고의 학년 짱 원수현, 끝없이 깨지면서도 짱이 되려는 열정을 불태우는 심영득…. 은 최고의 주먹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열혈남아의 세계다. 그래서 교실에는 항상 비장미가 넘치지만 곧 터무니없는 웃음의 경연장이 돼버리고 만다. 평범한 외모에 장기 하나 없는 김진도 같은 학생은 개그 본능을 발산해서 급우들을 웃긴 뒤 피범벅이 되어 산화한다.
정열맨과 허새만을 중심으로 한 고등학생들은 무림의 숨은 고수인 동네 할아버지, 이발소 아저씨, 여러 학부형, 그리고 정신병자 같은 경찰과 어울려 끝을 알 수 없는 격투와 추격전을 벌인다. 스케일은 점점 커져 담을 부수고, 빌딩 위를 날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달려간다. 한계를 모르는 상상력의 팽창, 그 정점에서 콧구멍이 확 열리면서 웃음보가 터진다.
이렇게 대륙적인 개그만 넘치는 게 아니다. 곳곳에 지지리 궁상의 생활 개그가 널려 있다. 정열은 아버지에게 용돈을 타내려고 거짓말로 보충수업 교재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에 자연스럽게 뒷주머니에 손을 가져가는 아버지. 여기에 덜컥 겁을 집어먹는 정열. ‘낚시신공 지갑 싸다구!’ 따위를 당할까 두려운 게다. 문틀에 발가락이 부딪히자 그 장면을 엑스레이로 보여주며 ‘족지골 골절’이라고 하는 페티시 개그, 의미 없는 고통의 목소리로 “안단티노!”라고 외치는 부조리 개그가 함께한다.
어떨 때는 본편보다 애독자들이 보내오는 패러디 만화나 이미지가 더 흥미진진하다. 귀귀가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며 상패를 발가락으로 짜깁은 이미지로 만들고, ‘야심작’ 아닌 ‘야식작’이라며 패러디 작품을 보내온다. “내 이름은 김씨래기, 나이는 18세, 국물맨으로 통한다.” ‘민둥컷’ ‘일출컷’ ‘캔디컷’ 등 여러 버전의 헤어스타일로 변신하는 캐릭터를 그려 보내는 건 그렇다 쳐도, 실제 고등학생이 실사로 수염컷을 연출해서 보내다니.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라니. 정말 웃음을 위한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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