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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하당과 여당당의 국회식 코미디

쩌렁쩌렁 웃기는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등록 2010-09-01 22:35 수정 2020-05-03 04:26
쩌렁쩌렁 웃기는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쩌렁쩌렁 웃기는 〈개그콘서트〉 ‘두분토론’

헤드폰을 귀에 달고 다녀서인지 청력이 많이 약해졌다. 요즘은 TV를 볼 때 자막이 없으면 알아들을 수 없어 점점 소리를 키우게 된다. 그러다 지난밤에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아차, 저 두 사람이 나오기 전엔 볼륨을 줄여두었어야 하는데. 기차 화통을 서너 개쯤 삶아먹은 뒤, 기가 차고 말이 안 나오는 소리를 서로의 귀에 대고 냅다 질러대는 두 사람. ‘두분토론’의 맞상대 말이다.

“남자가 하늘이다” 외치는 ‘남하당’의 박영진 대표와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고 소리 높이는 ‘여당당’의 김영희 대표. 대한민국의 남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며 상대 성(性)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데, 말이 토론이지 애당초 타협할 의지도 없이 소리만 내지른다. 만약 이게 국회 생중계였다면 당장 진저리를 치며 채널을 돌렸을 거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두 사람은 아무리 고래고래 데시벨을 올려도 유쾌하기만 하다.

사실 포맷은 단순하고 익숙하다. 이미 막강한 인기를 얻은 바 있는 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와 의 ‘남녀 탐구생활’을 섞은 듯. 정치인이 등장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풍자한 것도 낯설지 않고, 남녀의 엇갈린 생활과 사고 방식을 비교하는 이야기도 질리도록 들었다. 그런데 이 코너, 묘하게 신선하다. 아마도 그 핵은 저 시원시원한 목소리, 여당당의 김영희에게 있는 것 같다.

툭하면 “여자가 어디서 큰소리야!”라고 외치는 남성우월주의의 남하당 대표에 맞선 여당당 대표. 일단 목소리에서부터 기가 꺾이지 않는다. 그리고 ‘네까짓 경상도 남자들이 말도 안 되는 봉건적인 윤리로 여자들을 눌러대는 건 겪을 만큼 겪어봤어’라는 듯, 속 시원한 소리를 질러댄다. “남자들 레스토랑 가서 뭐합니까? 먹는 내도록 이 돈이면 자장면이 몇 그릇인데, 이 돈이면 당구가 몇 판인데….” 그리고 시상식 때 김혜수에게 가슴 파인 옷 대신 겨울 점퍼를 입히려고 한다.

차분하게 들으면 여당당 대표의 말도 별로 합리적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큰 공명을 얻는 것은, 상대방인 남하당 대표가 진정한 억지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여자들 노래 부르는 꼴도 못마땅해한다. “헤이 거기 거기 미스터~, 뭐 미스터? 남자의 호칭은 무조건 선생님이야.” 여자들이 살림은 하지 않고 멋 부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건방지게 네일 아터, 네일 아터?” 내용도 내용이지만, ‘으’와 ‘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투리 발음의 극적인 효과가 절묘하다.

가장 큰 재미는 이 핑퐁 게임의 맞상대가 서로 절묘하게 부딪혔을 때다. 남하당은 여자들이 쇼핑한다고 시간을 보내는 걸 탓한다. 이에 역공을 펼치는 여당당. “이런 남자들이 어떻습니까? 홈쇼핑에 여자 속옷 광고하면, 그 침 질질 흘리면서….” 거기에 갑자기 정치인의 본분을 잃고 사심을 드러내는 남하당. “남자의 러시아 사랑을 매도하지 마.” 어쨌든 ‘개그는 개그일 뿐’, 진짜 국회는 썩은 양파 까는 코미디를 그쳐주었으면 좋겠다.

이명석 저술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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