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춤바람이 났다. 집 근처에 살사댄스 학원이 생겨서 다녀볼까 해, 얘길 들은 게 두 달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다. 한데 두 달 만에 춤바람이 났다.
우선 학원은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에 간다. 저녁 7시 반에 학원에 도착해서는 작은 가방에서 척 하니 댄스화를 꺼내 신고 밤 10시까지 춤을 배운단다. 그리고 다음날인 수요일에는 살사동호회의 ‘정모’에 참석해 새벽까지 춤을 춘다. 주말에는 서울 홍익대 앞, 강남 등지에 있는 살사클럽에 가서 또 새벽까지 춤을 춘다.
정말이지 다시 말하지만 이 친구, 두 달 전까지 안 그랬다. 사실 이 친구는 모범생이다. 효녀에 공부도 잘하고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해왔다. 남자를 만날 때도 늘 진지하게 만나고 친구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연애도 안 하고 친구도 안 만나고 야근도 때려치우고 춤을 추러 다닌다니. 안 되겠다 싶어 따라나섰다. 왜? 그렇게 재밌으면 나도 하려고.
화요일 밤 9시, 그의 학원에 잠입했다. 연습실을 슬쩍 엿보니 5쌍의 남녀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다. 들어가 앉아 구경을 시작했다. 살사댄스의 강렬한 음악. 쿵쿵짝 쿵쿵짝. 나도 모르게 발끝이 들썩인다. 선생님이 갑자기 ‘차차차’ 반주를 틀었다. 쿵짝 쿵쿵짝. 아아, 나도 일어나서 스텝을 밟고 싶다.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2학년 때 새로 부임해온 체육 선생님은 무용 전공자였다. 그는 우리에게 ‘차차차’ 댄스를 가르치고 싶어했다. 차차차는 라틴아메리카 댄스의 하나로, 경쾌한 발놀림이 특색이다. 선생님은 강당에서 우리를 두 명씩 짝지워 놓고 설운도의 를 틀어주셨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노라면 키득키득 웃음이 났다.
선생님은 곧 체육 실기평가로 차차차 실력을 평가하겠다고 공표했다. 여학생끼리 교실에서도 붙어서 차차차를 추는 모습은 일상의 풍경이 됐다. 그 모습을 본 교장 선생님이 ‘열받으셨다’. 체육 선생님은 교장실로 불려갔다. 이게 무슨 풍기문란이냐, 학교를 뭘로 아느냐, 그런 춤은 카바레나 가서 춰라. 선생님은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그 춤은 학내에서 금지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밤 10시다. 연습실을 가득 채운 남녀의 얼굴이 모두 땀에 젖어 있다. 춤 연습이 끝났다. 음악이 끝나고 손을 놓는 순간엔 모두들 정신을 차린 듯 어색해한다. 다시 모범생의 얼굴로 돌아온다. 양복을 입고 온 한 회사원은 수줍게 자신의 댄스화를 서류가방 속에 챙겨넣는다. 번쩍이는 댄스화를 얌전한 서류가방이 품는다. 살사가 왜 좋으세요, 물으니 자유로워서요, 라고 답한다.
알고 보니 살사 선생님도 직장인이다. 퇴근 뒤에 연습실에 오면 그는 회사원에서 살사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모범생 친구도 섹시 댄스퀸으로 변신한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변신을 감행한 이들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연습실을 나선다. 겉으론 평온을 되찾았다. 근데 발끝엔 여전히 살사음악이 재생 중이다. 쿵쿵짝 쿵쿵짝. 친구야, 이거 진짜 신나는구나. 그럼 우리, 다음주엔 살사클럽에 진출해보자꾸나.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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