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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는 틀렸고 대안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민영화·자유무역 등 주장에 조목조목 실증적으로 반박하는 ‘신자유주의 극복 실천 요강’
등록 2009-06-18 14:24 수정 2020-05-03 04:25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펴냄, 1만3천원

민영화는 언제나 선인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아일린 그레이블 미국 덴버대 교수가 함께 쓴 는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2002), (2003), (2007) 등 앞서 출간된 그의 책들에서 거듭 확인됐듯이 신자유주의의 허구에 줄기차게 맞서온 장하준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사적 사실들에서 뽑아올린 명쾌한 실증력이다. 예컨대 국영기업·공기업이 독점적인 형태로 운영되니까 시장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따라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신자유주의자들은 주장하지만, 장하준은 역사적 사실로써 명징하게 반박한다. 국영기업은 물, 공익사업, 위생, 기초교육, 전기, 통신 등과 같은 분야에 유리하다. 개발도상국에서 상수도체제의 민영화는 절대다수 국민들에겐 엄청난 재앙으로 귀결했다. 민영화가 더 적절한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도 국영기업 매각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며 부패가 수반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정수입을 늘리려는 공기업 민영화는 팔 수 있는 공기업이 무한하지 않은 이상, 한계가 있고 예산적자 줄이기에도 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다.

여기까지가 가 제8장 ‘민영화’ 항목에서 제시한 ‘신자유주의적 관점 기각’의 대체적인 내용이다. ‘기각’이라니? 이 책의 독특한 전개방식을 보여주는 장치의 하나인데, 각 항목마다 먼저 일반론이나 용어해설 등이 간단하게 나오고 그 다음에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나온다. 해당 항목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주장이나 논리가 일목요연하게 기술되는 부분이다. 그 다음에 그에 대한 지은이들의 반박이 조목조목 전개되는데 바로 ‘신자유주의적 관점 기각’이다. 그 뒤에 마지막으로 ‘정책대안’이 붙는다. 그렇다면 정책대안은 무엇인가? 요약하면, 민영화를 밀어붙이기보다는 공기업 조직을 개혁하고 정보와 감독의 질을 높이며 인센티브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무역정책과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각각 독립 항목으로 신자유주의적 관점과 반박이 전개되고 대안을 제시한다. 자유무역은 특히 개도국엔 최선이 될 수 없고 지금의 ‘선진국’들이 발전 초기 자유무역으로 성공했다는 주장도 거짓이다. 개방이 빠른 성장을 위해 최선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의심스럽다. 대안은 각국 현실 조건에 맞춰 보호장벽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도 정부 개입을 모두 배제하지 않고 있으니 개도국들은 그들끼리 연대해 집단행동으로 맞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그 밖에도 지적재산권, 국제민간자본 이동, 국내금융 규제, 환율과 통화정책, 중앙은행제도, 재정정책 등이 모두 이런 식으로 도마 위에 올라간다. 그리하여 맹목적 외자유치 구호가 얼마나 허황되고 위험할 수 있는지, 지적재산권과 중앙은행 독립이 어떻게 악이 될 수 있는지, 왜 변동환율제가 화근이 될 수 있는지를 실증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교리에 집착하는 경제학자와 정책입안자들은 어떤 대안도 상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제기되는 대안을 용납하지도 않았다. “대안은 없다”고 한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가 그 전형이다. 지난 25년 동안 우월감에 젖은 신자유주의의 오만과 완고가 세상을 지배했다. 그 결과 우리는 인류 역사에 전례 없는 규모의 빈곤과 불평등, 절망과 맞닥뜨리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전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교리에서 벗어나 다시 제대로 된 경제발전 정책을 요구하자. 이 책 집필 목적이다. 책 제목도 거기서 나왔고 ‘대안 경제정책 매뉴얼’로 부제가 달린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신자유주의 극복 실천 요강인 셈이다. 그들은 외친다. “대처는 틀렸다. 대안은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대안이 존재한다.”

한승동 한겨레 선임기자 sdhan@hani.co.kr

* 2008년 7월19일치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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