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신음이 유난히 길고 높았다. 아내 손을 움켜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응애~ 응애~!” 아기 울음소리에 귀가 번뜩 뜨였다.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봤다. 2009년 3월5일 새벽 2시20분, 딸아이가 태어났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게 치밀었다.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내 허리께 세운 가림막 탓에 아기는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이슨트 시 러블리(그녀가 사랑스럽지 않나요)?” 1976년 첫딸 아이샤가 태어났을 때, 스티비 원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기 때 시력을 잃은 그는 딸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으로 딸아이의 얼굴을 그리며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곡이 (1976) 앨범에 실린 다. 들머리에 삽입된 아기 울음소리는 아이샤로부터 따왔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선생님, 결심했습니다.” “시신경이 너무 파괴돼 개안수술이 성공하더라도 15분밖에 볼 수 없어요.” “그래도 좋습니다. 수술해주세요.” “지금까지 미루고 안 해온 어려운 수술을 왜 갑자기…?” “아이가 보고 싶어요. 딸아이 얼굴을 15분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수술은 실패로 끝났다.
스티비 원더는 끝내 아이샤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노래는 온 세상을 아이의 얼굴로 수놓았다. 요즘 난 매일 딸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며 흥얼거린다. “이슨트 시 러블리?”
서정민 한겨레 대중문화팀 blog.hani.co.kr/westmin
*‘서정민의 뮤직박스 올드&뉴’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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