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가 드디어 김밥을 썰기 시작합니다. 고소한 냄새가 퍼지면 뱃속에서 꼬르륵, 합니다. 좀비처럼 가족들이 부엌으로 몰려듭니다. 도시락에 들어갈 김밥 가운데 부분은 ‘노터치’ 입니다. 끄트머리 부분만 먹을 수 있죠. 식구가 다섯, 끄트머리가 두 개니 경쟁률은 5:2. 가까스로 낚아챈 김밥 끄트머리는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립니다. 바로 그래서 맛있는 줄만 알았죠, 김밥 끄트머리는요.
한데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니었습니다. SBS 이 ‘스페셜 초밥의 달인’으로 소개한 리츠칼튼 서울의 손재웅 실장은 “실제로 끄트머리가 맛있는 이유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말한 원리는 이렇습니다.
“김밥이든 초밥이든 꽉 눌러 만들면 안 됩니다. 너무 힘을 주면 밥알이 깨지고 떡지죠. 이러면 입에 넣었을 때 빡빡하게 느껴집니다. 한데 아무리 꽉 눌러싼 김밥도 끄트머리 부분에는 힘이 덜 미치게 되죠. 힘이 덜 들어간 부분은 모양이 허물어지기 쉽지만 대신 부드럽고 맛있습니다. 밥알 사이에 틈이 있어 입에 들어가면 금방 풀어지기 때문이죠. 이게 바로 ‘살살 녹는 맛’으로 느껴집니다. 게다가 가운데 부분에 비해 단무지, 계란부침 등 속재료가 더 풍부하죠.”
끄트머리가 맛있는 이유를 알고 나면 맛있는 깁밥·초밥 만들기 노하우도 나옵니다. 살짝 싸라는 거죠. 손재웅 달인이 말을 잇습니다. “다 만든 초밥을 형광등에 비춰봤을 때 밥알 사이로 빛이 새어나올 수 있는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만들려면 요령이 필요한데요. 우선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쪽 손가락을 감싸 ‘조이지 않고 살짝 잡는 정도’의 강도를 기억합니다. 밥알을 뭉쳐 그 정도로만 쥐어주면서 밥 덩어리를 손바닥 안에서 살짝 돌려줍니다.” 그래서 초밥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은 젓가락보다 손가락을 선호한다네요. 젓가락을 쓰면 초밥이 부서질 수 있으니 손으로 집어먹는 겁니다.
서울 공덕동에서 4년째 충무김밥을 말아오신 ‘고 여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밥을 5천 줄 넘게 말면서 손에 붙은 요령을 말로 표현하긴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너무 꽉 쥐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꽉 쥐면 김밥이 딱딱해져서 맛이 없죠. 대신 끄트머리가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게 끝까지 밥을 잘 펴야해요.”
한편 네이버 지식인엔 ‘왜 김밥은 꽁다리가 더 맛있을까?’란 질문이 2005년에, ‘김밥은 왜 꽁지가 더 맛있을까요?’란 질문이 2003년에 올라왔더랍니다. 정답은 없지만 창의적인 답변들이 달렸습니다. “사실 모든 음식은 꼬리가 맛있는 법입니다. 생선도 꼬리가 맛있듯이 김밥도 꽁다리가 맛있는 거죠~”(아이디 ‘crowbes’), “심리적으로 다른 것들과 모양이 다른 데서 오는 특별함이 김밥의 맛을 더해줍니다”(아이디 ‘tlsrnrdj1’) 등입니다. “엄마가 썰자마자 집어먹으려고 서로 치열하게 싸우니 더 맛있죠”(아이디 ‘go2006go’)란 답에선 동지애도 느껴지네요. 아, “전 끄트머리 싫은데요”란 답변도 ‘인정!’입니다. 취향은 각자의 것이니까요.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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