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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한세상 지루하지 않게 사는 법

등록 2008-09-05 00:00 수정 2020-05-03 04:25

책읽기의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하게 해주는 두 권의 책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책에 관한 책 두 권이 나왔다. (이권우 지음, 그린비 펴냄, 1만1900원)는 독서 방법론을 설파하고 있고, (장희창 지음, 뿔 펴냄, 1만1천원)는 다양한 책들을 나름의 관점으로 읽어내고 있다. 두 권 다 쉽게 읽히면서도 포만감을 준다.

책읽기는 ‘공자되기’

그런데, 책에 관한 책이라니. 책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에 관한 책까지 내야 하나. 출판평론가 이권우씨는 의 ‘책머리에’에서 이 질문에 답한다. “우리는 참으로 한심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책을 읽어 교양과 지식을 쌓자는 당연한 말을, 목에 핏대를 올리며 해야 하는 시절이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니까 “이러다가는 우리 공동체가 벼랑 끝으로 몰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독서교육이나 도서관운동에 발을 들여놓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왜 책을 읽어야 하나’라는 주제로 책까지 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책읽기가 한물간 짓이라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이씨는 공자의 ‘성공신화’에 대한 이야기로 책의 첫머리를 연다. 머리가 짱구인지라 ‘구’(丘)라는 이름이 붙었던 공자. 그의 아버지는 요즘으로 말하면 읍장 정도를 지낸 무관인데, 전처에 아들까지 있는 상태에서 공자의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그 아버지가 3살 때 세상을 떠나면서 공자의 집단도 풍비박산났다. 사마천은 “공자는 가난하고 천하였다”고 썼다. 에서 공자는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열다섯은 지학(知學), 서른은 이립(而立)…”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지은이에 따르면 이 말은 공자가 열다섯 살 때부터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는 뜻이다. 여기서부터 공자의 ‘인간승리’가 시작된다.

공자는 가난과 자신의 낮은 사회적 신분에 좌절하지 않고 책을 엮은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읽은 책이 다섯 수레에 가득 실리도록 읽고 또 읽었다. 마침내 서른 살부터 제자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지은이는 독서의 이점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 그것은 ‘변신’ 혹은 ‘상승’이다. 독서는 자신의 열악한 삶을 개선하는 ‘사회적 상승’을 가져다준다. 세속적인 성공과 독서의 상관관계는 오랫동안 등한시돼왔으나 오히려 강조될 필요가 있다. 독서는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존재론적 상승’도 이루게 해준다. 공자는 죽어라고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책읽기는 ‘공자되기’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은이가 첫 번째로 권하는 방법은 ‘천천히 읽기’다. 그는 유명한 속독가인 일본의 논픽션 작가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법에 반대한다. “나는 느리게 사는 첫걸음은 천천히 읽기에 있다고 여긴다. 읽기의 영토마저 속도주의자들에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게으르게 읽어야 상상할 여유가 생긴다.

두 번째는 ‘토론하고 쓰기’다. 힐러리 클린턴은 고등학교 시절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였다. 그런데 정치 교과 선생님은 모의 토론회에서 그에게 민주당 쪽 토론자 역할을 맡겼다. 자료를 찾아보고 토론하면서 힐러리는 자신이 진정한 열정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토론이라는 용광로를 거치면서 책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세 번째는 ‘겹쳐 읽고 깊이 읽기’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관련된 책들을 함께 읽어야 한다. 같은 주제를 다뤘으나 주장과 근거가 다른 책들을 비교해가며 읽을 때 창조적 독서가 가능하다. ‘깊이 읽기’는 책 읽는 방법 가운데 기본에 해당한다. 책벌레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한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내는 것이다.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자서전에서 그의 스승 와타나베 가즈오 교수의 가르침을 전한다. “어떤 시인, 작가, 사상가들을 상대로 3년가량씩 읽어나간다면, 그때그때의 관심에 의한 독서와는 별도로 평생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네.”

는 독문학자 장희창씨가 신문에 기고한 짧은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짧은 만큼 책의 핵심만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고전부터 여행기까지 수많은 책들이 나열되는데, 책의 진의는 1부 ‘문학, 노마드의 삶 노마드의 기록’과 5부 ‘21세기, 탈근대사회의 문화의식’에 담겨 있다. 지은이는 책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이 ‘노마드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것은 자신에게 익숙한 영토를 떠나보는 것이고, 권력의 배치 구도를 흔들어보는 불순한 시선이나 전복적인 상상력으로 나타난다.

지은이는 다양한 고전 문학작품에서 노마드의 시선을 발견한다. 김만중의 은 봉건사회에 대한 전복적인 상상력이다. 작품에서 공주는 양갓집 규수에게 본처 자리를 양보한다. 신분이 서로 달랐던 양소유의 여인들은 서로를 형제자매라 칭한다. 지은이는 이것을 왕권사회에서 평등을 설파하기 위한 교묘한 장치들로 읽는다. 전반부에 펼쳐치는 몽룡과 춘향의 연애 장면은 주자학적 위선을 뚫고 억압된 욕망을 분출하는 19세기 민중들의 내면이 환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후반부에선 희미하게 사그라진다. 성의 자유로움이 권력 체제 안으로 흡수돼버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연암 박지원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쳐난다. 박지원은 노론 명문가 출신임에도 등용문 진입을 거부하며 종이에다 덜렁 그림 하나 그려놓고 과거장을 빠져나왔다. “양반으로서 보장된 출세의 길을 거부했으니,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연암은 유목민이며 노마드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익숙한 자리를 탈주하여 낯선 세계를 떠도는 노마드 문학의 세계적인 대작인 를 남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는 조선과 청나라, 익숙함과 낯섬 사이를 끊임없이 떠도는 노마드의 증언이다. 중 역졸과 마부들이 밥을 짓는 장면을 읽으며 지은이는 박지원의 ‘투명한 시선’을 느낀다. 그 시선에는 우상도 거짓 권위도 배겨내지 못한다.

노마드의 운명

책의 마지막 글은 자크 아탈리가 쓴 에 대한 서평이다. 미국을 대표로 하는 현재의 정착민 제국은 ‘시장, 이슬람,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노마드 세력 앞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이들의 지배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제국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살아남는 것은 사상의 노마디즘이고, 타자에 대한 관용이며, 인간들 사이에 증가되는 상호 의존성이다. 달리 말해 권리와 의무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는 것은 민주주의다. 이것은 자크 아탈리의 결론이며, 지은이의 결론이기도 하다. 모든 노마드를 포괄하는 불멸의 이념, 민주주의 말이다.

두 권의 책을 빠져나오며 우리는 지은이들이 책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독서를 무엇이라 정의하든, 그 밑바닥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깔려 있다. 읽어온 만큼이나 읽어야 할 책들이 많다면, 한세상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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