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를 좇아 세계를 누빈 기록, 에릭 오르세나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에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던 너,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하사와 병장’이라는 남자 듀엣이 부른 노래다. 한창 부르던 1970~80년대에는 전혀 아니었으나, 지금 들으면 새삼스레 ‘세계화’의 화두를 던진다. 이 노래의 추억은 태평양을 건너왔다. 원곡은 미국 CCR 그룹의 〈Cotton Fields〉라는 노래라고 한다. 목화를 키워드로 그물을 던지면 아프리카, 유럽, 미 대륙 전세계가 딸려온다. 18세기 면제품에 열광한 유럽은 원료 공급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식민지 미국 37도 이남 모든 지역에 목화를 심었다. 수확을 위해서 노동력이 필요했고,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데려온다. 목화는 ‘건너는 게’ 숙명이었는지 우리나라 또한 문익점의 붓통 속에서 국경을 건넌다. 목화는 문익점이 훔치고 싶었을 만큼 탐스러웠지만, 손가락이 잘라질 수 있을 정도로 목화 잎은 매우 날카롭다. 여기 경제학자이자 에세이스트 에릭 오르세나가 목화에 미쳐 길을 떠났다. (황금가지 펴냄). 그 길은 목화처럼 탐스럽고 날카롭다. 그 길에서 프랑스인 오르세나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물음표를 던진다. “세계화, 예컨대 과거의 세계화와 오늘날의 세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 한 조각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천 조각이란 그저 몇 가닥의 실과 매듭, 그리고 몇 차례의 여행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말리에는 ‘옷감’을 나타내는 단어, ‘말’을 뜻하는 단어가 모두 ‘소이’다. 말리섬유개발회사(CDMT)는 문맹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농부는 목화를 제대로 재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은 말한다. “목화는 우리 마을의 기관차입니다.” 그러나 CDMT의 미래는 밝지 않다. 목화의 시세가 폭락하면 정부의 재정적자가 늘고, 세계은행에 손을 벌리고 세계은행은 조건을 내건다. “내가 도와줄 테니, 민영화시켜라.” 말리 옆 부르키나파소는 다른 길을 갔다. 같은 상황에서 전국 목화생산업자 조합이 결성됐고, 수확 때마다 지불이 보장되는 하한가를 정했다. 말리 농민은 비웃었으나, 지금은 부르키나파소 농민이 세계은행의 ‘국제 전문가’를 비웃는다.
전세계 목화의 가격을 낮춘 것은 미국의 목화 생산량이다. 정부 관계자와 생산자는 다른 나라의 ‘지원금 정책’을 폐지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물론 미국에도 지원금이 있다. “다른 나라들이 자국 농부들에게 분배하는 지원금을 폐지한다면, 우리 역시 기꺼이 지원금을 폐지할 의사가 있”는 지원금 말이다. 그리고 그 지원금의 75%는 최상위 10% 안에 드는 농장주들에게 돌아간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우즈베키스탄은 또 다르다.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2위의 목화 수출국이다. 사회주의 시대 ‘전국민 동원령’이 내려졌다. 10살부터 25살까지의 모든 젊은이들은 목화밭으로 향했다. 그 뒤 민영화가 따랐다. 50년 동안 일정 크기의 땅을 농부에게 임대해준다. 국가는 목화를 싼값에 산다. 돈은 은행에 집어넣는데 이 은행은 명령에 따라 언제든 국가에 자금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농부는 여러 달, 여러 해를 기다려야 대금을 손에 쥐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물값을 받는 민영화도 시도되려 한다. 목화처럼 물을 많이 마시는 식물은 없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더하다. 토양은 염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어 두 번씩 씻어줘야 한다. 스스로 지리학 박사라고 소개하는 한 전직 공산당원은 말한다. “(세계은행이 방문해 물값을 받으라고 한 데 대해) 이번만큼은 세계은행이 틀렸다고 할 수 없더군요. 돈을 내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절약 정책은 없으니까요.”
오르세나는 이 나라들 외에도 아프리카의 이집트, 아메리카 대륙의 브라질, 아시아의 중국을 거쳐 프랑스에서 여정을 마친다. 여행기는 ‘미테랑 연설문’ 작성자로 이름을 드높인 저자의 필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여행기는 문장으로는 즐거우나, 목화와 세계화에 대한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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